골목

2026/01/05

by 나무느을보

36.


사슬로 매어놓은 작은 자전거 앞에 작은 새들이 몇 앉아서 바닥을 쫀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스러기 몇 점 떨어져 있다. 부스러기는 잘게 쪼여 새들의 목청을 타고 그들의 깃을 틔운다. 박스를 쌓아놓은 벽면에는 작은 고무노끈으로 고정된 거울이 있고 어르신은 항상 그것으로 머리가 삐치지 않았는지 살핀다. 새들은 작은 날갯짓으로 재빠르게 날아오르고 곧 아이들의 발걸음을 맞는다. 내가 아이였을 적엔 바닥만을 살피면서 걷는 거북이였는데. 이제 아이들의 발걸음은 당찬 구석이 있다.


종이먼지가 날린다. 가끔 붓을 쓰는 서실에서 날리는 것보다 훨씬 진한 내음으로 풍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잊는다. 그 장소 자체에 대해 가장 쉽게 연상시킬 수 있는 것이 후각이므로 그것을 연관 짓는다. 억한 감정이 올라왔을 적에도 비슷하다. 지레 겁을 먹거나 없는 대상에 화를 꼴깍거리며 삼키거나 하곤 한다. 신기루를 바로 보는 법은 어렵다. 이전에 겪었던 나쁜 수순을 떨치기란 갈증을 겪는 망망대해서 바닷물을 들이키지 않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합판을 얽은 가벽이 보인다. 첼로의 울림통보다도 얇고 조잡한 합판으로 되어있음을 안다. 그 뒤로는 누군가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쉽게 드는 웃풍과 난로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가벽은 철책 뒤로 가려져 가닿는 이가 없다. 사람들이 오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청년은 분명 정신을 놓쳤다. 그러나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그는 외로운 것이다. 통용되지 않는 화폐를 쓰는 도심에서 그는 고립되어 있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가벽 뒤에 산다. 그가 말다운 말을 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는 대신 울음을 운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이 그러하듯이 낮게 울며 손짓한다.


37.


아주 비참한 생은 자신의 박탈을 철저히 자각하는 생이다. 고로 넋을 잃는 것은 너절한 비극 앞에서의 정당한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비극을 가끔 듣고 내 곁으로 들여놓고 나면 마음을 쓰고야 만다. 아프고, 두렵게 여겨진다. 한 꺼풀의 도심의 살갗을 벗겨내면 그 안에서 신음하는 것들이 보인다. 혹은 자세히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일 수 있다. 그것에 마음을 쓰기엔 일상은 덧없으리만치 빠르게 흘러간다. 그 기민함은 쓸데없는 유약함이라 발음된다. 비극을 넘겨 짐작하지만은 말자. 한없이 작아진 존재에게 연민은 유려한 폭력이다. 사슬을 풀고 자전거를 타는 어르신의 일상 앞에 나는 비참도 그 무엇도 아니다. 우리는 개인이다. 나는 그의 세상에 틈입하여 판단할 어떠한 자격조차 주어지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제 그는 나보다 큰 존재이다. 떳떳하게 일상을 이끌어나가는 인물이다. 순간 훔쳐본 수치심에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듯 도심의 살갗 아래는 건재하다. 고통스러울지언정 호젓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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