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2026/01/06

by 나무느을보

38.


침상을 정리한다. 그 안에 남은 온기를 털어내고서 몸을 일으키고 바로 앉았다. 책상다리를 한 채로 십오 분 정도 잠을 정리하고 나면 조금은 뭐든 시작할 기분이 든다. 뭐든 약기운이 올라오기 전이 적당하다. 바깥바람을 쐬며 다리를 건너는 풍경엔 작은 물새들이 섞여있다. 상록수 그늘 근처서 희게 차려입은 백로들을 지나서 작은 건물에 다다랐다. 아침은 늘 같다. 같아야만 했을 수 있다.


약간의 이야기를 쓰고 관찰기를 쓴다. 아주 작은 상가다. 사람들이 붐비는 일도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기에 나는 그곳에 기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 가게를 여는 7, 8년 이전부터 줄곧 나는 아침이면 이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 돌이켜보면 순전히 즐거워서 하던 일 같다. 무엇인가를 쓰고 이야기를 짓는 일. 그것이 마이너하건 마이너하지 않건 간에 나는 읽는 일 보다 쓰는 일을 사랑했고, 헤어 나오지 못했기에 가끔은 단속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맴돌기도 했다.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는 일은 내게 하나의 집이 되어주었다. 적어도 발을 뻗칠 하나의 구간이 되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설령 누군가에게 가볍게 여겨지더라도 말이다.


같은 곳을 돌다보면 하나의 울타리가 형성되는 것 같다. 가령 쾨니히스베르크의 칸트를 떠올리는데, 정말 강박적이라 일컬을 만큼 철저한 인물이다. 그리곤 문득 묻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 수 있겠느냐고. 그리곤 동경하게 된다. ‘수행승처럼 정갈한 생을 살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39.


새들은 밤이 오면 나직하게 울음을 울고 졸기 시작한다. 새들에게 밤은 잠과 동의어이다. 얕은 강 위로 선돌처럼 잠을 청하는 오리들 하며, 교량 아래 불빛을 벗 삼아 틈에 몸을 구긴 비둘기들은 기척조차 없다. 까마귀들은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튼다. 그 누구도 알아볼 수 없게. 높은 곳에 위치한 불빛들이 껌뻑거리다가 새벽이 오면 하나둘씩 꺼가고 사람들도 잠에 든다. 모난 콘크리트 안에서 자는 사람들 중 몇은 불면에 시달리다 아침이 오고서야 겨우 눈꺼풀을 붙일 수도 있다. 우리 중 몇은 잠을 잊어 버렸다. 낮과 밤이 뒤집힌 생활을 한다. 밤에 뜨는 도심의 별들은 바닥에 가라앉았고 밤을 잊은 사람들은 진정으로 넋을 빼앗긴 것 같다.


가끔 잠이 오지 않을 적엔 뒤척거리다 몇 자의 책을 읽다가, 멍하니 눈을 감고 앉아있어도 본다. 나의 밤은 수치스러움의 연속이다. 부끄러운 기억이 몇 점 떠올랐다가 차가운 것처럼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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