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2026/01/07

by 나무느을보

40.


불을 삼킨다. 뱉어냈어야 할 불씨를 삼키고는 앓는다. 그 불씨가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가하여 무너뜨린다. 뜨거워진 것은 억세었던 만큼 구푸릴 수 있다. 고로 달궈진 종은 거푸집을 깨뜨리고 살가운 소리를 내보이는 단단한 악기로 거듭난다. 망치질과 작은 정을 쪼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그 안에 새겨진 문구를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범종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제도하고 위로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생전 억센 날처럼 굴었던 이들의 대속은 유연함을 위한 불씨를 삼키는 것이다. 틈 없는 고통이 자리한다. 비명 내지를 틈조차 없는 그런 지옥도. 그 속에 떨어진 사람들을 연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지옥의 사람들은 살이 쉽게 마르고 엉긴다고 들었다. 고로 불을 삼키고도 멀쩡할 수 있다고.


어린 시절엔 범종이 우는 소리를 참 사랑했다. 일정한 떨림이 전해지면 그것이 참 아름답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에서도 어긋나지는 않는다. 어긋나는 것은 오직 감정이다. 감정은 점차 무뎌지고 바늘 같은 자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날붙이가 목에 드리워져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올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런 초연함을 가진 이들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그저 동경할 뿐이다.


41.


불을 삼킨 아이는 떠나가라 운다. 촛농이 울듯이 녹아 없어 질듯이 울고 있다. 아이는 사흘 밤낮을 내리 울었다. 그리고 목이 쉬고 탈진하고서야 그 울음을 그쳤다. 그리곤 곁의 누군가가 또 떠나갈까 동그란 손을 거머쥐곤 외조모를 놓아주지 않았다. 외조모는 이 억센 불 같은 아이를 돌보느라 세 번이나 실신했다. 아이의 불이 외조모로 옮겨갔다. 심장이 약하시던 나의 외조모는 그 불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아이는 커서야 알았을지 모른다. 나의 할머니께서 그 불씨를 받아낸 덕에 겨우 숨이 붙어 있을지 모른다고. 이 유약한 성품으로 겨우 살아있을지 모른다고.


심장이 아팠던 나의 할머니는 그렇게 급하게 심장이 멎어 돌아가시고. 결국 갚을 빚만이 가득 남았다. 아이는 슬피 우는 법을 잊어 밤새 향로를 지켰다. 이젠 스물 말엽의 청년이 있었다. 불씨를 피우는 향로 앞의 청년은 먹먹해진 생각으로 작게 피붙이 같던 과거를 떠올렸다. 함께 앉아 간판을 읽던 시절. 도란거리며 초등학교를 산책하던 시절. 그리고 외할머니의 노래를 따라하던 시절까지. 그 모든 것들이 가시처럼 아프게 머리를 찌르면서 지나갔다.


하늘서 떨어진 사람은 한없이 착한데 박복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처럼 하늘서 떨어진 사람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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