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43.
방의 벽면으로는 가구들과 물건들이 자리한다. 하릴없이 물건을 헤던 이는 분명 달팽이처럼 느리게 걷는 시간을 원망하고 있다. 낮은 쉽사리 꺼지지 않고 타오르며, 밤은 어찌나 차갑던가. 그는 여명이 틀 즈음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그가 그르친 사고를 하는 탓이다. 그의 생각들은 거친 쇠줄처럼 그의 등줄기에 흠집을 낸다. 선반 위의 책들은 대개 그가 한번 읽고 얹은 것들이다. 혹은 거창하게 서가를 장식할 뿐 그가 초장부터 덮어둔 물건도 있다. 가령 철학서들이 그러했다. 그들의 말은 정교한 만큼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어떤 이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는 욕심이 앞섰던 셈이다.
벽면의 아래로는 작은 불상이 있다. 그는 승려를 꿈꾸었다. 정갈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으면 티벳의 아름다운 고원풍경이 드러났으며, 고원 속에서 머리를 밀고 만트라를 외는 자신이 보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타협을 거쳐야 했다. 적어도 반도에 마음에 드는 산사가 없을 리 없겠지만 그는 집에 남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셨고 무능한 아들은 적어도 떳떳하고 싶었다. 적어도 훗날 그들을 부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그의 두 번째 꿈이었다.
그는 이제 하릴없이 벽면에 쌓인 물건들을 본다. 배우던 산스크리트 교본과 한문책들 불경들 그리고 각종 철학서들. 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곱씹던 그는 다시금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44.
집 앞 사거리엔 고양이든 새든 짐승들이 쉽게 죽는다. 특히 직박구리는 분별없이 총총 날아다니는 통에 쉽게 차바퀴에 끼곤 한다. 고양이들은 영민하지만 쇠로 얽은 차는 무신경하게 굴러 그들을 해친다. 길손님으로 살다 죽는 이들은 슬프다. 볼 때마다 그것들을 치운 것은 단순히 바퀴에 그것들이 이겨지면 슬플 것 같아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손을 쉽게 더럽히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들 바쁜 일상을 보내기 때문이다. 깨끗한 손으로 다른 할 일이 있는 까닭이다.
짐승들이 차에 치이는 순간 가장 먼저 내면을 다친다. 내장된 장기들과 뼈가 부서지면서 피를 쏟는다. 하지만 놓아두면 더 비참해질 것 같았다. 다른 일 없는 사람이던 그는 손을 더럽혀도 나쁠 것 없었다. 고로 그는 죽은 그들을 얌전히 안아 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그들은 곤히 잠을 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죽음을 영원한 잠에 빗대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온 그는 손을 씻고 향불을 올렸다. 왜인지 떨림이 가시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