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에 앞서

()사물-현상-인식-추상-정신

by 나무느을보

인식에 대해서 생각한다. 최초의 판단은 있음(有)이다. 있음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려면 인식하는 존재 본연의 존립에 위협이 가해지는 상황을 이해해야한다. 그러나 인식이란 기본적으로 타자존재(他者存在)로부터 촉발되며, 그 이전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것은 보다 정신적, 직관적인 이해로 말미암는다.


가령 눈으로 시야가 들어올 때에 우린 곧바로 안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안구라는 하나의 통로가 존재하는 것으로만 이해되며 사물로 안구에 관한 것을 곧바로 조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타자존재로서 한번 다시 재인식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리고 타자의 존립을 이루는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자극으로 받아들인다. 필자는 이를 인식이라 명명한다. 인식의 방향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그리고 보통의 인식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듯이 사물적인 접근법으로 내면을 향하는 순간, 그곳엔 혈맥과 림프 신경다발들의 전기신호와 같은 무의미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기제를 설명할 수 있을지언정 민활하게 살아있는 개구리를 해부해 놓은 것과 같이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이다. 따라서 경험을 임상삼아 직관과 추상화에 대한 해제를 달아 접근하는 정신분석 방법이 등장했다.


대개의 지도를 그리자면 이러하다.


사물(外) – 현상 – 인식 – 추상 – 정신(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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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현상은 그 사물 간의 조응 순서이다. 인식은 하나의 상(相)을 익히는 것이오. 추상은 기억이다. 정신은 그 모든 인식한 것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맥락이라 필자는 간편하게 정의하는데 이는 실은 부족한 설명이다. 정신이 하나의 맥락에 불과하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정신이라는 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에 기인한다. 개인의 정신이 말하는 바는 다른 개인의 정신과 상이하며 때때로 잡음을 빚어내기도 한다. 이는 저마다의 내면을 지니고 있으며 타인이 어느 정도 외연(바깥의 존재로)인식되는 까닭이다.


분명한 것은 생명은 ‘나’라는 자아를 유지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그 방식은 새싹이 굳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거스름의 방식이다. 저항하여 하나의 존재의 내면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지금부터 서술하는 것들은 필자 개인이 바라본 하나의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