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 현상 - 인식 - 추상 - 정신
사물의 규정은 직관적이고 쉽다. 그것은 하나의 ‘있음’이고 존재이다. 그것은 현상으로 발현되며 인식되어 하나의 존재로 규정된다. 그러나 없음의 경우는 다르다. 없음은 ‘있음의 부재’를 인식하는 것으로 원초적인 없음은 습득된 적이 없으므로 이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고로 온전한 없음은 가능성의 영역이 된다. 그에 반해 있음은 모든 것들의 단위이자 화소가 되고 없음은 움직임을 이룩하는 하나의 공백이 되어준다.
인식은 움직이는 것들을 필두로 이뤄진다. 움직이는 것에서 정지한 사물을 입증해내고 추상의 차원에서 고정된 존재를 유추해낸다. 그 고정된 존재가 ‘있음(有’,etre)이다. 고로 우리가 없다고 인식한다는 것은 실은 있었으나 없어짐 이라는 동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없다’는 서술은 이렇듯 복잡한 과정을 포괄한다. 고로 보통 서술상의 ‘없음(無)’과 인식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없음(虛, void)’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사물 현상 인식 추상 정신
있음(有,정적) - 있음(有,동적) - 있음(有,동적) - 있음(有,정 동적) - 있음(有,동적)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있음은 동적인 존재를 파악하는 것을 기초로 이뤄진다. 고로 인식의 필두는 현상(phenomenon) 즉, 변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고정된 주체로서의 파악은 후차적으로 이뤄지며 이는 추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곳에 하나의 정신이 존재함을 체현케 한다. 이것을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한 하나의 명제를 도출해 놓는다. ‘Cogito ergo sum(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인식하므로 그 인식 주체는 존재한다.)’
※ 이러한 방식의 탐구에는 병폐가 존재한다. ‘나’라는 개념은 숫자 0과도 같다. 숫자 0의 발명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객체로서 재인식하면서 도출된 개념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자의식과 그 맥이 같다. 그러나 숫자는 세상과 면밀히 소통하고 조응하지만 정신에 있어서는 ‘철리(哲理)’라고 불리는 순수 추상은 그 목적성이 모호할 뿐더러 사물, 현상적으로 검증이 전혀 불가능하다. 뇌과학에서 그러한 부분을 일단 충당하는 듯 보이나, 형이상에 있어서는 하나의 사고 통로로 여겨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