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꾸준하고, 꾸준하지만 더딘.
햇살에 마른 빛바랜 사진은 붉은 기를 덜어냈다. 붉은 기운을 탈색한 화면 속의 아이들은 희뿌옇게 웃고 있다. 아이 셋이다. 걔 중 하나인 그는 뭔가 석연치 않은 꿈을 꾸고 있다. 손거울 장난처럼 허탈하게 여겨진 그는 자신의 벗기 힘든 허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뻣뻣하게 온몸에 들러붙은 그것은 주인행세를 하며, 이는 분명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진 속의 아이 셋은 뜨거운 여름철의 볕을 배면에 두며 웃고 있다. 아이 둘은 일찍이 집을 나섰고 아이 하나는 겁을 집어먹었다. 일찍이 떠난 아이 둘이 노쇠할 적에 몸담을 법한 우울에 그는 온몸을 적시고 있다.
허무에 대해서 생각하던 그는 뭔가 그 안에서 몸을 뉘일 적절한 구석이 없는지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텅 빈 그곳이 안식처가 될 리는 없다. 그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들 부모가 베푼 한없는 희생에 대해서 떠올리다가 한 여자에 다다랐다. 분명 적절하지 못한 순서였다. 아이들은 햇살을 품은 듯 웃었지만 여자의 시야에서 그것은 지켜야할 하나의 책임이었을 것이다.
해가 뉘엿하다. 그는 이제 걸음을 걷고, 의미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의미란 늘 조촐한 것으로 여러 번 볕이 지나고 나면 빛바랠 물건일지 모른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언제까지나 머물러있을 것 같은 부모님도 노쇠해가고, 그도 나이를 먹었다. 둥지에 홀로 남은 새는 날개의 가능성을 의심한다. 처음부터 글러먹은 비행이었을 수도 있다고. 혹은 기회를 진즉에 박탈당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 묻는다.
문지방 너머로 발을 디디면 진동이 몰려오던 순간에선 떠나왔지만 그의 가슴엔 늘 수치심과 두려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비겁함과 조악하게 구겨놓은 젊음 속에 그는 굼벵이처럼 뒹굴 뿐이다. 햇살이 비치면 굼벵이의 몸은 단단하게 마른다. 푸르른 기가 가을처럼 떠나고도 그가 살아있다면 분명 더 걸어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