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홀로 희어지도록 비추는 것.

by 나무느을보

흰 것들이 새처럼 내려앉으면, 나는 몸을 동이고 눈을 밟으리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오전의 좁은 동네에 미처 잡히지 못한 것들을 내리 그으며, 한갓 얼룩뿐일 글귀를 새기리오. 올해에 내린 흰 것들을 손에 꼽다가 그것들이 미처 열손가락에 못 미치고 있음을 알았을 적에, 나는 숨죽여 손바닥을 한 움큼 움키곤 못내 부끄러워졌소. 손바닥엔 얼음처럼 차갑고도 녹아내리는 것들이 남았소. 나는 깊고도 흰 숨을 맑게 갠 허공으로 길게 뱉고, 그것들이 어디론가는 향하겠지 하고 내어 놓았소.


천변엔 잠을 깨이지 못한 물새들이 부조처럼 가만히 멈추어 서있고, 강물은 부단히 흐르고 있습니다. 바쁜 사람들이 떠나고 동네가 완전히 텅 비고 나면,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멀끔해진 머리로 의미 없는 말들을 게워 놓습니다. 얼음처럼 아로새겨진 것들은 물결 따라 흐르고, 상처를 닮은 것들도 그처럼 드넓은 곳을 향해서 서서히 흐르겠지요. 흐르고 흘러 모든 것들을 누운 병처럼 덜어내고 나면, 떠나보낸 것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밟힌 눈이 먼지처럼 잿빛으로 흐려질 즈음엔 사람들은 낮에 벌어진 일들을 풀어놓을 터입니다. 눈과 동떨어진 낮 중의 일들은 암실의 필름처럼 컴컴한 색을 띌 듯합니다. 흰 눈이 투명하게 걷히고 나면 비로소 상(相)이 맺힐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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