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의 핑계.

by 나무느을보

잇고 있는 것들은 쉽게 끊긴다. 다가온 것들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것들이 어떤 투겁을 썼는지를 의심하고 그것들을 액면 그대로 믿지 못한다. 내면이 복잡한 사람은 쉽게 밤을 앓는다. 쉽게 달아오르는 얼굴 안쪽에 붙은 벌레는 연신 몸을 뒤집는다. 수치스런 생을 산 것 같다. 그 누군가도 상처입지 않기를 바랐는데, 도리어 모두가 상처를 입고 달아났다. 그는 불쾌한 것이 되었고 그 누구에겐 이해받을 수 없는 회색분자가 되었다.


그가 머물고, 걷는 지점은 항상 동일하다. 울타리를 넘지 못한다. 한번은 그가 멀찍한 곳으로 떠나려 한 적이 있었다. 깡마른 소년이었던 그는 정신증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분명 그 도주로도 그 스스로 계획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서툰 망령이 어린 그를 이끌었지만 도중에 좌절되었다. 차량들이 수직으로 달리는 길목에서 그는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 음성이 금방이라도 50킬로그램의 깡마른 뼈다귀를 찢어놓을 것 같았다.


남자가 학창시절로부터 멀어졌을 적에 그는 살집이 붙었고, 그의 울타리는 좀 더 촘촘해졌다. 가끔 마주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그를 알 수 없는 사람이라 했다. 행적이 묘연하고 사귀는 벗들도 없는 사람이라고. 혹은 괴상하게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면식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엔 그는 꽤 평범한 사람처럼 굴 수도 있었다. 남자는 그 일을 축복같이 여긴다.


잿빛의 구름이 옅게 깔린 하늘이다. 잠깐 볕이 났을 적 천변에 다양한 새들이 모였다. 민물가마우지, 눈처럼 깨끗한 백로들, 왜가리들, 그리고 작은 밀화부리들. 그러나 지금 그것들은 없다. 기껏해야 제비 두어 마리가 높새바람에 오르내릴 뿐이다. 회색의 풍경에 그는 뭔가를 곱씹다가 곧 비가 내릴 것 같다는 기시감에 머리를 파묻고 걸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 길을 걸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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