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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Apr 18. 2018

나의 독립은 우당탕쿵탕

준비되지 않은채로 시작된 나의 독립과 우리의 동거 

 우리가 동거를 시작하게 된 건 상당히 갑작스러웠다. 내가 마침 네 직장 근처에 있는 곳에 취직이 된 것이다. 둘 다 출퇴근이 버거웠던 터라 회사 근처로 이사하는 걸 고려하고 있었다. 각자 따로 자취를 하느니 돈을 합쳐 함께 사는 게 더 이득이라 생각했다. 내가 독립한다고 하니 처음에는 서운한 기색을 비추시던 부모님도 딸이 꼭두새벽에 허덕이며 출근하는 모습을 보기 딱했던지 집을 알아보라고 하셨다. 동거 얘기가 나온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내 직장 도보 5분 거리이자 네 직장 지하철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투룸을 구했다. 그렇게 나의 독립이 시작됐다.  


 엄마는 내가 독립하기 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며 늘 호들갑을 떨었다. 살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생선은 어떻게 다듬고, 행주는 얼마나 자주 삶아야 하는지, 삶의 기술들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사가 결정된 후 엄마는 저녁을 준비할 때마다 옆에서 이것 저것 배워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아마 엄마는 내가 엄마 품을 벗어나 살기 시작하면 얼마나 불편한 것들이 많은지 깨닫게 되길 은근히 바라는 듯 했다. 실제로 나는 전입신고를 하는 방법도, 각종 공과금을 처리하는 법도, 감자 한 알의 평균 가격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채 집을 떠났다. 그러나 집이 아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전업주부가 없는 집이 누추하고 조금씩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우리 둘 월급을 다 합쳐도 아빠 월급에 미치지 못했으니 살림은 빠듯하고 옹색했다. 부모님은 우리 집을 딱 한 번 보고 가시고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냐.."며 심란해하셨다. 수납 공간이 부족한 집은 아무리 치워도 늘 어지럽혀져 있었다. 냉장고에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고, 빨아놓은 속옷이 없어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집이 더럽다고 누구도 화내지 않았다. 너희들 때문에 엄마/아빠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는 한탄도 들을 필요 없었다. 속옷이 없으면 편의점에 후다닥 뛰어가 새로 사왔다. 집은 기력이 있는 주말에 몰아서 치웠다. 어차피 집이 작아서 청소도 금방이었다. 먹을 게 없으면 지갑을 챙겨 어슬렁어슬렁 집 밖으로 나왔다. 끼니를 야무지게 챙겨먹을 때면 독립하려면 배워야 할 게 산더미라며 야단을 부렸던 엄마가 생각나 속으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가족이 아닌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하니 너무 마음이 편했다. 더 이상 새벽에, 저녁에, 주말 아침에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었다. 나도 밥값 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려 억지로 책상에 앉아있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 공간에서 집안의 갈등을 중재하는 맏이가 아니었고, 믿음직스러운 장녀도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집에는 "그럴 거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화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는 혼자 소파에 누워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다. 편안함을 느끼고 나서야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이렇게 편했던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와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떤 역할도 아닌 스물 여덟의 나를 처음으로 만났다. 


 독립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게 아니었다. 그건 스케치북의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 때까지 내 앞에 있던 스케치북은 엄마 아빠가 그렸던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러나 독립하며 알게 되었다. 빼곡히 채워진 그림을 당연히 받아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 페이지를 뜯어버리고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백지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었고, 어떤 것도 그리지 않아도 됐다. 그건 정말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나는 힘든 날이면 세 살 아이처럼 울면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신이 나면 중학생 소녀마냥 작은 집 안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스무 살 때처럼 갑자기 큰 소리로 사랑한다고 외치거나 문득 네 손을 잡고 춤을 췄다. 너와 함께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 아주 편안하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새 페이지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 주에 나는 첫 직장을 그만 뒀다.   



  내 인생의 새 페이지에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스물 여덟 나는 백수였고, 별다른 경력도 없었고, 다시 대기업에 가기는 싫었고, 좋아하는 걸 찾고 싶었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감도 안 잡혔다. 내가 확실히 가지고 있던 건 빛이 잘 안 드는 반전세 투룸과 나를 믿어주는 너(그리고 네가 벌어오는 1인분의 생활비)가 전부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내 인생은 무지하게 후들거렸고, 나는 내 두 발로 단단히 서기는커녕 겨우 네 발로 기어가는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터무니 없는 수준으로도 독립을 시작할 수 있었다. 행주를 삶는 시기도, 공과금 내는 방법도, 감자 한 알이 얼마인지도 살면서 배울 수 있었다(사실 행주는 1회용으로 써서 삶지 않는다). 퇴사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로도 살아진다는 것을.... 아무튼 모든 게 준비된 시작은 없다. 혼자 충분히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독립하는 것이 아니다. 첫 발을 뗄 용기만 있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된다. 우당탕쿵탕 하면서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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