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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May 27. 2018

사랑의 민낯을 본다면

너무나 불순하고 평범한 우리 사랑을 볼 때 함께 웃음이 터질 거야

평소보다 일을 많이 맡게 되었다는 나의 푸념에 너는 자동반사처럼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의례히 하는 그 걱정이 괜시리 마음에 걸렸다. 너는 왜 이렇게 대답한 것일까?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한 것일까? 내가 어떤 이유로 일을 많이 받게 되었는지, 그게 정말 나에게 무리가 되는 것인지, 만약 실제로 무리하는 거라면 그런 나를 위해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물어보지 않았다. 너의 말투는 다정했지만, 그 안에 나를 위하는 다정함은 없었다. 평소에 간이며 쓸개며 다 내줄 것처럼 헌신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네가, 직장 동료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할 법한 피상적인 위로를 던졌다는 게 서운했다. 공허한 너의 위로 이면에 담긴 진심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네가 무리해서 피곤해지면 나도 같이 피곤해지니까, 네가 무리하지 않기를 바라게 돼.” 공허한 위로에 기분이 상했다는 투정에 너는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무리하면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너는 그럴 때 옆에서 눈치를 보게 되고 덩달아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내가 무리한 일정을 잡으면 자연히 너까지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말했던 “무리하지 마”는 나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너를 위한 부탁에 가까웠다. 


그런 순간이 있다. 나를 위한 것이라 믿었던 연인의 행동 이면을 들춰봤을 때, 거기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이기심이 놓여있는 걸 발견하게 될 때. 내가 무리해서 피로할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 아니라, 나의 무리로 인한 너의 피로를 걱정하는 너의 아주 솔직한 마음과 마주하게 될 때.  


나는 웃음이 터졌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이 진지하게 미팅을 하다 방구를 뿡 끼는 걸 볼 때처럼. 내가 바라는 네가 아닌, 실제의 너를 만나는 순간 마음 한 켠이 경쾌하게 파열음을 내며 깨졌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서로에 대한 환상을 쌓아 올린다. 상대의 진짜 모습이 아닌 내가 바라는 상대의 모습을 보려한다. 나는 너를 헌신의 아이콘으로 보고 싶다. 늘 나를 살뜰히 챙겨주고, 집안일을 좋아하는 살림꾼이고,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실제로 너는 어느 정도 그런 성향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실제의 너보다 네가 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나는 따뜻하고 이타적인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는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너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지만, 너는 너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있다. 그래서 “무리하지 말라”는 너의 말 속에 나를 위한 마음만 담겨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진실은 나의 소망과는 다르다.  


 나는 네가 좋은 연인이기를 바란다. 너도 스스로가 좋은 연인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각자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 크고 작은 NG들은 모르는 척 넘어간다. 너는 나를 살뜰히 챙겨준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과자 먹는 나에게 짐짓 엄격한 표정으로 밀가루 먹으면 탈나기 쉽다고 호들갑을 떠는 너에게 나는 ‘잔소리를 들어 시무룩해진 철모르는 아내’로 장단을 맞춰준다. 그러면서 그 다음 날 외식으로 튀김음식 먹자고 천연덕스럽게 제안하는 너는 모른 척 해준다. 저녁상을 잘 차리고 살림꾼 역할을 잘 해냈다고 뿌듯해 하는 너를 안다. 그래서 나는 브로콜리와 토마토가 뭉개져 썩어가고 있는 냉장고 문을 굳이 들추지 않는다. 너는 사랑이 그득한 눈빛으로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너는 욕실 배수구에 걸린 머리카락을 치워주지는 않는다. 결국 너는 네가 해주고 싶고, 해줄 수 있는 것만을 해준다는 걸 안다.   



우리가 주고 받는 사랑이 순도 100%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사랑 뒤에는 각자의 이기심, 비겁함, 위선, 귀찮음, 무지와 안이함 같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을 감는 건 우리가 이 역할극, “재미는 없지만 헌신적이고 다정한 남편과 자기중심적이지만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역할극이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이 투영된 개연성 있는 진실이다. 낭만적이며 따뜻하고, 달콤해서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때로 이 역할극이 피로해질 때가 있다. 상대방의 어설픈 연기를 참고 받아주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런 날 우리는 이 무대의 막을 잠시 내리고 진실이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우리는 좋은 연인이라는 화장을 지운다. 진실은 낭만적이지 않지만 편안하다. 네가 힘든 게 싫어서 내가 무리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너의 말에는 한 치의 기만도 없다. 나에게 전해지는 건 너의 대사가 아닌 진심이다. 우리는 더 이상 무대에 서있지 않다. 극을 끝내고 막 뒤에서 웃고 떠드는 배우들처럼, 우리는 진실 안에서 긴장을 푼다. 너의 맨 얼굴을 본다. 특별히 헌신적이지도 사랑이 넘치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이다. 나랑 비슷하다.  


“사실 너는 내가 무리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무리할 때 너한테 지랄하는 게 싫은 거네?”라는 질문에 너는 고개를 끄덕인다. 너도 웃음이 터졌다. “그럼 이제부터 ‘무리하지 마’라고 하는 대신 ‘무리 ㅇㅋ, 지랄 ㄴㄴ’라고 답장하면 어때?” 비슷한 사람 둘이서 마주보고 한참을 키득거린다.  


이 관계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과 실제 우리의 모습을 넘나들 것이다. 어느 날 너는 백마 탄 왕자처럼 나를 안고 날아갈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너에게 감동하겠지만, 동시에 백마가 없다면 내가 필요해도 너는 달려오지 않을 수 있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너를 위해 내 심장도 내어줄 수 있다. 그러나 피곤한 날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내다버려줄 수 있을 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 어떤 모습도 거짓은 아니다. 너무나 불순하고 평범한 우리 사랑의 민낯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늘 이렇게 함께 웃음이 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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