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지도, 허기지지도 않는 관계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주방에 가보니 작은 냄비에 1인분의 육수가 담겨 있었다. 국자와 그릇, 심지어 다 쓴 국자를 놓을 작은 종지까지 옆에 다 준비되어 있다. 핸드폰을 보니 네가 보낸 메시지가 와있다. “새우 완자는 스테인레스 용기에 담아뒀으니까 먹을 만큼 꺼내서 먹어. 육수는 작은 냄비에 있는 거 끓이고, 끓으면 완자 넣고 3분간 더 끓이면 돼”. 저녁 때 조금 늦게 들어온 너는 내가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었는지, 육수 맛은 입에 맞았는지 몇 번이나 재차 물어봤다. 이럴 때 너는 꼭 엄마 같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가 결혼 할 사람이다!’라고 느꼈던 운명적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상하게 자꾸 떠오르는 장면은 있다. 네가 신설동에서 자취할 무렵 나는 일과가 끝나면 너희 집으로 향했다. 한 겨울 너희 집으로 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불 켜진 창문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밥 냄새와 함께 더욱 김이 훅 끼쳤다. 앞치마를 두른 너는 “밥 거의 다 됐어!”라고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안경에는 김이 잔뜩 서려있었다. 우리는 앉은뱅이 상을 펼쳐놓고 두부와 감자가 큼직하게 들어간 된장찌개와 갓 지은 밥에 무짱아찌를 함께 먹었다. 어쩌다 내가 평소보다 많이 먹는 날이면 너는 몹시 기뻐했다. 한겨울에도 조금 땀이 날 정도로 뜨끈하고 축축한 공기로 가득 찬 너의 방, 함께 먹기 위해 차린 저녁, 저녁을 먹는 나를 보며 행복해하는 너. 내 삶에 오랫동안 결핍됐던 것들이 나를 감싸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어하고, 해주면서 기쁨을 얻는다는 건 나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는데 “내가 너 밥 차려주는 사람이냐?”와 “네가 몇 살인데 엄마가 밥을 차려줘야 하는 거냐?”라는 말이었다. 재미있는 건,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살았던 내가 집에서 밥 먹을 때는 손에 꼽게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는 점심 때 즈음 집을 나서려는데 엄마가 그제야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서운한 마음에 “조금만 더 일찍 차렸으면 나도 점심 먹고 나갈 수 있었는데”라고 볼 맨 소리로 투덜거리며 집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 소리를 듣더니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엄마가 그렇게 화를 냈던 복잡한 이유를 이해한다. 석사까지 졸업한 똑똑하고 잘난 엄마가 나한테 밥을 차려줄 의무는 없었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것 중 무엇도 당연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받는 거, 다 빚이야” 엄마는 말했다.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나는 빚을 지고 살았다.
엄마는 11월에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너는 참 들러붙지 않고 선득해서 좋아"라는 말을 딸에게 칭찬으로 하는 사람, 왜 사랑하냐는 중학생 딸의 질문에 "글쎄….내 에고의 확장이라 사랑하는 거 아닐까?"라고 대답하는 사람, 당신의 어머니를 꼭 "친정엄마"라고 부르며 그렇게 해야 거리감이 느껴져서 좋다고 설명하는 사람.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 다만 이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정황과 추론이 필요했다. 그런 추론을 해야 하는 시간이 싫었다. 티비에 나오는 그런 엄마, 내 친구네 엄마 같은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식새끼 밥 챙겨 먹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내가 못살아~ 등짝 한 대 찰싹 때리는 엄마, 때로 "딸~"이라고 살갑게 부르는 엄마, "엄마 나 사랑해? 왜 사랑해?" 물어보면 "뭘 그런 걸 물어봐 딸이니까 사랑하지~"라고 싱겁게 웃어넘기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가 있는 삶을 살아본 적 없었다. 그런 엄마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울고 싶었다.
너의 뜨끈한 방 안에서 나는 자주 울었다. 내가 먹고 싶은 반찬들로, 내가 먹을 수 있는 시간에 오롯이 나를 위해 차려진 밥상을 보며 울었다. 네 방에 사놓은 내 잠옷을 입으면서 울었고, 네 책상 서랍 속 종류 별로 준비한 생리통 진통제를 보고도, 네가 오밀조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나가면서도 울었다. 어떤 날에는 왜 우는 지도 모른 채 울컥 눈물이 났다.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결핍에 너의 온기가 스미자, 나는 녹기 시작한 빙하처럼 쩍쩍 갈라졌다. 네 자취방이었지만,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공간이 된다는 걸 느꼈다. 그곳에서 나는 누구에게 얹혀있지 않았다. 얻어먹지도 않았다. 네 옆에서 나는 빚을 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결핍이 나를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말하기는 어쩐지 부끄럽다. 더 대단하고 로맨틱한 이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굶주린 사람이 귀신 같이 음식 냄새를 알아채듯, 나는 네가 오래된 상처와 결핍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냄새 맡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거나 다치면 나보다 더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픈 게 벼슬이냐?”며 화내던 기억 속 아빠의 얼굴이 잊혀진다. 어쩜 뭐든 이렇게 잘 하나며 나의 작은 성취에도 너는 칭찬을 퍼붓는다. 내가 중학교 때 처음으로 반에서 7등을 해서 기뻤을 때 아빠는 “나는 그 성적이면 창피해서 말도 못했다.”고 술에 취해 빈정거렸다. 너의 칭찬세례 속에서 그 때의 수치심이 조금씩 씻겨 내려간다. 너는 내가 쓴 일기를 보더니 너무 좋다고, 일기를 출판하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어딘가에서 목소리를 내면 “얘, 아무도 네 의견 안 물어봤어.”라고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지금 나는 너의 응원을 받으며 꾸준히 일기를 쓴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나의 생각은, 출판되고 구매되고 있다. 네 옆에서 나는 나로 사는 게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다. 베인 상처에 마침내 연고를 바른 듯, 오래된 허기를 따뜻한 식사로 채운 듯.
오늘도 너는 퇴근하면서 저녁에 뭘 먹고 싶냐고 묻는다. 챠슈덮밥과 새우볶음밥, 카레 중에 선택해야 한다.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아직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오늘 저녁 나는 상처 받지도 허기지지도 않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가 만든 이 가족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