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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Aug 08. 2018

어떻게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의 모든 면을 다 사랑하지 않아.  일부만 잘라서 사랑할 수도 없지만.

 며칠 전 집들이 때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면 아직도 헛웃음이 난다. 집들이가 파할 즈음이라 다들 조금씩 취해있었다. 너는 내 직장 동료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잡더니, 내가 차마 끼어들 새도 없이 아무도 묻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을 너희 아버지의 은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너희 아버님의 고용 상태나 은퇴 이후의 방황을 듣게된 내 동료들의 표정에는 난감함과 지루함이 역력했다. 한 동료가 “아버님 은퇴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예의를 지키며 대화를 마무리 하려 시도했다. 그러자 너는 손으로 과장되게 가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아, 저는 괜찮아요. 저는 부모님과 완전 독립했어요.”라고 답하며 그 대화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오마이갓. 진짜 그런 사람이었다면 왜 아내의 직장동료들에게 아버님 은퇴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인지?! 널 정말 사랑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남자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너의 이런 모습에 내가 새삼 실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너랑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점들이 눈에 쿡쿡 들어왔으니까. 너와 처음 포옹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설렘이 아니라 너의 물컹한 옆구리 살이었다. 나는 살집 있는 남자랑은 썸도 안타봤는데.... 키가 작고 머리가 크고 입술이 너무 얇은 건 귀엽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작가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나를 오래도록 좌절시켰다. 내가 반지의 제왕, 전혜린, 데미안, 이상문학상 작품선, 철 지난 올해의 문제 소설을 읽고 있을 때, 과학동아를 읽고 고무동력기를 만드는 데 즐거움을 느끼며 자라난 사람이 있을 거라 상상을 못했다. 더욱이 그렇게 자라난 사람이 내 애인이 될 거라고는. 너는 정말 좋은 리스너였지만, 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실력은 형편 없었다. 대화의 공이 너에게로 넘어가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며 별 의미 없는 정보들을 우수수 쏟아놓았다. 듣고 있자면 어찌나 지겹던지. 너와 통화할 때 대답하는 척 하며 사실은 핸드폰으로 딴짓을 할 때도 많았다.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쓰인다는데, 이 사랑은 너처럼 덤벙대 콩깍지를 깜박하고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손톱 옆 거스름처럼 신경 쓰이는 너의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자괴감과 의심에 휩싸였다.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건 나쁜 일이니까. 만약 네가 나한테 그랬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나는 무척이나 서운하고 짜증났을 거 같았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할 거라면 헤어지는 게 예의가 아닐까?’ 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다. 물론 헤어지는 대신 너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는 척 할 수도 있었다. 내가 보기 싫은 모습들은 고개를 돌려 못 본 척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 연애가 무슨 재미인가? 그냥 사회생활을 하고 말지. 나는 선택해야 했다. 결백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관계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이기적인 내 모습 그대로 염치없이 이 관계를 붙잡을 것인지. 나는 헤어지자는 말 대신 살을 빼라고 말했다. 


 그럴 거면 왜 사귀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게 뭐냐고. 누군가의 모든 면면을 사랑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냐고?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은 네 엄마밖에 없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엄마도 내 모든 면을 사랑하지는 않았다는 걸 안다. 애당초 누군가가 다른 한 개인의 취향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는 상대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사랑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누군가를 다 좋아하려면 멀리서 대충 봐야 한다. 무엇이든 대충 보면 대충 다 좋을 수 있다. 나도 100미터 밖에서 보면 꽤 괜찮다. 별다른 흠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여드름 흉터에, 비대칭적인 얼굴에, 싸나운 성질머리까지 별로인 것들 투성이다. 사랑하면 가까워진다. 가까워지면 거슬리는 것들이 보인다. 나는 너에게서 싫은 면들을 발견하게 될 지라도 너를 대충 보고 싶지는 않았다. 내 마음에 안 드는 너의 부분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지워버리고 싶지 않았다. 너의 옆구리살은 실제 했다. 색이 기묘하게 빠진 얇은 입술도, 뭉툭하고 투박한 손도, 재미없는 대화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너의 면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마음도,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진심이었다.


 솔직히 나는 네가 조금이라도 더 내 취향의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심리학 교양 수업을 듣게 하고, 내 취향의 책들을 품에 들려 보냈고, 살을 빼라고 종용했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너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심리학 수업에서 A를 받고, 내가 권하는 책을 열심히 읽고서도 내가 원하는 대화를 함께 나누지는 못했다. 살을 빼라는 내 말에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몇 번이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 번에는 진짜 운동할게.”라고 약속을 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셨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분노하는 대신 나는 네 앞에서 안주를 나눠먹기로 했다.  



 너의 모든 면을 다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았다. 그렇다고 너의 일부만 잘라서 사랑할 수는 없다는 건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엷게 난 주근깨가 햇살에 반짝이는 너의 볼을 사랑한다. 얇고 비어 보이는 입술을 싫어한다. 하지만 입을 가리고 볼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사랑하는 너의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은 볼과 입술처럼 연결되어 있다. 재미없고 무던한 공대생이어서 내가 던지는 불평들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독하게 살을 빼지 못하는 너의 무르고 허술한 면들을 사랑한다. 밑도 끝도 없이 아버님의 은퇴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 너의 모습도 내가 사랑하는 어떤 모습과 이어져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음 번에 또 그러거든 네가 사랑하는 맥주나 더 마시라고 조용히 권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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