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물건들은 누가 고치나요?

by 이가령

지난 여름의 일입니다.

선풍기가 딱,

고장나 버린 거 말이에요.


2년 넘게 잘 써온

무소음 선풍기의 목이

가만히 있다가 뚝,

부러져 버렸습니다.


저와 애인은 당황해서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A/S 센터에 전화를 했는데요.

삼성도, LG도 아닌데

과연 수리를 해줄까 의심하면서요.


상담원 선생님은 주소를 알려주며

그리로 택배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소가,

집에서 차로 30여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어요.


택배 보내고, 기다리고, 받고,

그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느니

직접 맡기는 게 편하겠다 싶어

바로 차를 끌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도착한 곳은

버려진 물건들이 모이는

어떤 거대한 창고였는데요.


컨테이너 창고 같은 곳에

박스 수백 개(과장이 아니에요!)가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고,

기술자 선생님들이

각자의 책상을 차지하고

온갖 가전제품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선풍기 맡기러…."


왜 직접 왔냐고 물어보시면

뭐라고 해야 하나 난감했는데,

안내해 주신 분은 군말없이

선풍기를 가져가셨습니다.

목이 부러진 거면

10분이면 될 거라고 하시면서요.


기다리는 동안 저는

그 미지의 공간을 찬찬히 둘러봤는데요.

한가득 쌓인 박스에는

택배가 출발한 곳의 주소가

적혀 있었는데요.

서울, 경기, 대전, 부산,

심지어 제주도에서 온 것도 있었어요.


'신기하다.

모든 고장난 물건이

이곳으로 모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너덧 명쯤 되는 기사님들은

어정거리는 우리에겐 관심 없이

맡은 일에 열심이셨습니다.

어떤 기사님은 핸드폰으로

<런닝맨>을 보면서 드라이버를 돌리셨고요.

다른 분은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들으시는 것 같았어요.

조용한 공기 속에

가끔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다 됐어요.

목 부품만 바꾼 거예요."


그때 부품을 찾으러 사라지셨던

기사님이 돌아와 선풍기를 돌려주셨습니다.

새것처럼 깨끗해져 있었어요.

고치면서, 닦아 주신 모양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물건이 고장나면

센터에 맡기고 잊곤 하는데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직접 수리 센터를 보고 나니

직접 오길 잘했다 싶었어요.

고맙다는 인사도 직접 할 수 있고,

저절로 고쳐져 돌아오는 줄 알았던

가전제품의 비밀(?)도 알 수 있고.

무엇보다도 매일매일

고장난 물건들의 나사를 풀고, 조이며

살아가는 분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 가려진 곳에

얼마나 많은 노동이 존재하는 걸까요?

모두가 일하면서 살지만

몇 명이나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인사를 받으며 살아갈까요?

보람도 없고 인사도 못 받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삶이겠지만요.


그럼에도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가는

그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저희 집 선풍기는 무사히 고쳐져서

집으로 돌아왔구요,

올여름 내내 잘 썼답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칭찬은

그때 능숙하게 드라이버를 돌리던

수리기사님들께 해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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