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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Apr 03. 2016

2월의 남도

쌀쌀했다. 몸도 마음도 아직은 겨울이던 한 달 전, 우리 가족은 훌쩍 남도로 떠났다. 동생의 전역 기념 여행이었지만 다가올 3월을 맞이하기 위한 잠깐의 쉬어감이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운전대를 잡았다. 집에서부터 목포까지 결코 가벼운 여행길이 아닌데 두 아들들이 운전도 못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죄송했다. 장롱 면허라는 죄송스러움을 한껏 느끼며 부랴부랴 새벽길을 나섰다. 아침은 금새 찾아왔고 어느새 도착한 곳은 전주였다. 햇살은 따뜻하고 날은 포근했다. 성큼 봄이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한옥마을을 떠나며. 여전히 패딩이 필수인 날씨였다.

길거리야, 다우랑 만두, 문꼬치 등 먹거리 천국인 요즘 대세 한옥마을. 그 만큼 사람들도 많고 정신이 없었다. 발길을 빨리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고창에 있는 선운사. 조용하니 고즈넉한 사찰이였다. 아쉬운 것은 늦겨울에서 초봄 사이, 선운사를 비롯한 선운산에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는데 그 장관을 못봤다는 점이다. 아직은 조금 때가 이른 시기였다. 터질 듯한 꽃망울이 몇 개 보이기도 했지만 빨간 동백꽃의 얼굴을 보진 못했다. 지금 쯤이면 모르겠다. 날도 따뜻하니 산에 산을 봄꽃들이 장식하고 있을 지 모르겠다.

선운사의 겨울. 아직은 산도 나무도 휑하기 그지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여행의 백미는 먹거리다. 선운사를 나오자마자 허기가 졌다. 고창하면 풍천장어라는데 사실 남도를 오며 장어 맛집을 수소문했지만 이렇다 할만한 곳을 찾진 못했다. 그래도 어떻게 찾아 들어간 장어집은 결과적으로 꽤나 마음에 들었다. 장어 밑에 파를 깔아 굽고 장어가 익으면 여러 장아찌와 파 구이, 양파초절임에 쌈을 싸서 먹는 방식이었다. 처음엔 굉장히 낯설었지만 금세 장어맛에 취했다. 복분자 소스로 초벌한 장어가 눈에 띄었지만 역시 그냥 소금구이가 제일 담백하니 맛있었다.

장어, 넘나 맛있는 것

배를 채우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숙소가 목포였기에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녁은 낙지였는데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둘째날은 목포에서 유명한 코롬방제과의 새우바게뜨, 크림치즈바게뜨로 아침을 시작했다. 차안에서 배를 채우며 서둘러 향한 곳은 무안의 제일회식당이였다. 수요미식회에서 1년 동안 다룬 맛집 중에 넘버원으로 꼽았던 그 곳, 무안에서도 꽤 들어가야 있는 정말 시골에 있는 식당이였다. 오픈하고 30분 정도 지나서 도착했는데 대기번호는 벌써 25번.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됐지만 앞에서 빠지는 사람이 꽤 있어 생각보단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메인인 기절낙지에 호롱이와 연포탕을 시켰다.  기절낙지는 초에 살짝 찍어서 넘기는 맛에 감탄했고 호롱구이는 적당한 간이 배여 참 맛있었다. (전날 낙지에 실망한 이유가 바로 너무나 간이 쎘던 낙지호롱이 때문이다.) 추가주문을 하려 했지만 불가. 다시 오긴 또 힘든 만큼 더 즐기려했는데 아쉬웠다.

제일회식당 기절낙지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라

둘째날은 담양이 주요거점이었다. 숙소는 죽녹원에 잡고 온천으로 향했다. 먼저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사진도 찍고 하는데 날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날씨가 좀 더 좋았음 참 좋았을텐데 허둥지둥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달갑지 않은 회사 전화까지 콤보로 여행을 지치게했다.) 온천을 끝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바깥은 깜깜한 저녁이었다. 부모님이고 우리 형제고 밤에 뭐그리  돌아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온천을 끝내고 떡갈비로 배를 채우고 죽녹원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어제 내리던 비는 어느새 눈이 돼있었다.

죽녹원, 비가 오니 그림이다.

마지막 날은 서둘러 올라왔다. 담양에서 유명한 국수거리에 잠깐 들려 국수 한 그릇에 삶은 계란으로 배를 채우고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날 출근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아, 이천 아울렛에 잠깐 들려 저번처럼 살 만한 옷이 있나 조금 둘러봤으나 허탕만 치고 나왔다. 날씨도 들쭉날쭉에 일정도 2박 3일이라 촉박해서 아쉬움이 남은 여행이였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또 이것저것 추억이 떠오르고 또 가고싶다. 가족여행은 정말 휴식이 된다고 할까. 넷이서 떠난 오랜만의 여행이라 더 좋았다. 가을에는 아버지께서 강원도로 떠나자고 하시는데 그 때는 또 얼마나 바쁜 일정으로 볼거리, 먹거리(?)를 채울지 기대된다. 반복된 일상에 지치는 봄날 요즘, 또 훌쩍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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