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성 Mar 13. 2016

별일없이 산다

아니, 듣기 싫은 '충고론'

몇 주 동안 자의반 타의반으로 브런치를 손을 놨다. 핑계라는 걸 안다. 몇 개 쓰지도 않고 방치해논 걸 반성한다. 새로운 부서에 온 이후로 정신이 없다. 벌써 두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은 것이 낯설다. 당장 닥친 일을 해치우는 데도 정신이 없다보니 일주일이, 한 달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몰랐던 요즘이다. 바쁘기는 한데 막상 돌이켜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 주말에도 일어나서 못 본 TV를 보거나 컴퓨터 조금하면 끝나기 일쑤고 금세 월요일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일요일 저녁이다. 매 주 겪는 일이지만 여전히 다가오는 월요일은 낯설다. 이번 주는 좀 다르려나.


별일없이 산다. 그 말이 딱이다.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나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보도자료는 언제쯤 쉬리릭 써낼 수 있을지 모르겠고 복잡한 생각들은 맨날 머릿 속에서만 맴돌고 있다. 그렇게 싫어하는 충격요법이 필요한 시점인가. 최근 어린 아이들 경연 프로그램에서 한 아이가 포카혼타스 OST를 부르는 영상을 봤다. 아이의 너무나 맑은 목소리에 그야말로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왠지 모를 충고처럼 와닿았다. 한 친구는 옷도 사고 연애도 하라는 말을 했다. 지금 너의 황금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조언이자 충고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아직 스스로 확신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우스운 꼴 당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외모든 연애든 결국엔 자신감 부족이라는데, 요즘은 자신감 회복은 커녕 바쁘다는 핑계로 묻어가고 있다.


충고의 힘은 은은한데 있다. 아이의 노래와 친구의 '30대 황금론'은 그런 맥락에서 와닿았다. 누구나 충고는 듣기 마련이다. 특히 비슷한 충고가 여러사람에게 들린다면 그건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다만 큰 변화를 이끄는 충고는 다르다.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오늘 드디어 이세돌이 이겼다. 알파고에게서의 첫 승이지만 수많은 훈수꾼들로부터의 승리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세돌에게 어마무시한 짐을 던져줬다. 인류의 패배라느니, 한 번만 이겨도 기적이라느니 하며 무수한 말들과 충고가 그에게 쏟아졌다. 그는 밤샘 분석과 기회를 놓치지 않는 한 수로 승리를 따냈다. 만담꾼들의 얘기보다 오롯이 자신에게 더 집중해 일군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세 판을 내리지고도 이런 승리를 따낸다는 것은 단순히 1승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값진 승리를 따낸 것이다. 알파고로부터, 그리고 수많은 말, 말, 말들로부터.


더불어 알파고는 충고를 듣지 않으니 참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둑만 두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마지막 판도 그냥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오늘 졌다고 내일 영향 받을 일도 없고 충고도 들을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오늘 내일이 서로 영향을 받고 누군과와 관계도 만들어 가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말을 던지거나 충고를 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얼마 전 회사일에 지쳐갈 때, 동생에게 공무원을 하라는 엄마의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무서운 점은 그렇게 듣기 싫던 엄마의 충고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과 동생에게 하고 싶던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생각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지랖인지 진심인지, 반농담조로 공무원이 짱이라고 거들긴 했다.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동생에게 고민을 더해보라고 했었는데, 세상 사는 게 그리 평탄치가 않으니 하는 소리라며 금세 말을 바꿨다. 그냥 말을 줄여야겠다. 충고를 듣는 게 싫다면 훈수도 안 두는 게 적당해 보인다. 동생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핸드폰 세 개, mp3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