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얀 Mar 13. 2016

핸드폰 세 개, mp3 하나

동기화하지 못한 추억들을 상징하는 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들

책상 서랍에는 핸드폰 세 개와 mp3 하나가 있다. 어떤 건 너무 낡아서 손이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한 기기들이다. 굳이 새로운 핸드폰을 가지면서도, 예전 기기를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핸드폰 안에 얌전히 잠들어 있는 추억들 탓이다.

나는 디지털 세대의 한 명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의 문자가 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다니던 도중 스마트폰을 처음 써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하나로 기기들의 많은 기능이 모이게 되면서, 핸드폰은 이제 내가 듣는 음악과 한 컷으로 남은 일상과 메모들을 기억한 새로운 뇌가 되어버렸다.

기기가 바뀌면 추억도 물 흐르듯 동기화하면 좋으련만, 항상 나는 기억을 옮기고 보관하고 추리는 데 서투르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날 손에 들고다니던 기기를 물에 빠뜨리거나, 잃어버리거나, 액정이 깨지면서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한 상태로 바뀌어버리면, 내 기록과 역사는 그 기기안에 갇혀버린다.

따라서 버리지 못한 디지털 기기들에는 다른 내 역사들이 잠들어있다. 어느 핸드폰에는 고등학교 시절 아끼고 아껴 엄선한 50개의 문자가 잠들어있고, 오랫동안 썼던 하늘색 mp3에는 교환학생 시절에 학교 안에 있던 호숫가 주변을 돌며 들었던 음악 목록이 담겨있고, 처음 산 아이폰에는 제주도의 추억과 내 일기들이  있었다. 아이폰의 액정이 깨지면서 변경하게 된 갤럭시노트에는 출장을 가면서 찍어온 메트로폴리탄의 그림들과 멕시코의 사진들이 잔뜩 담겨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의 구절과 읽고싶었던 책의 리스트들도.

이미 새것으로 기기를 바꾸면 이전 낡은 기기를 관리하는 게 힘들어진다. 항상 가지고 다니거나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억지로 충전기를 꽂거나 메모리카드를 빼내는 수고를 더해야하건만, 추억을 추리고 보관하기엔 나는 게으르니까.

설령 그 기기들 속의 사진들을 복원했다 치더라도, 다시 선별하려고 보면 의미와 맥락을 잃어버린 몇 천장의 사진에 불과하기에, 나는 섣불리 사진을 정리할 생각을 못한다. 대신 나는 이 기기가 나를 기억해준다고 믿으며, 가끔 손을 대보곤 한다.

갑작스러운 추억의 분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내 경험과 닮았지만 다르다고 생각했던 일화가 있었다. 잠깐 청강을 했던 수업에서 양로원에 간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길고 긴 인터뷰를 했던 논문(Lindley&Wallace, 2015)을 읽었던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 위독해지면 자그만 집으로 이사가거나 양로원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물건을 처분할 수 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의 집을 잃어버린 노인층들의 이야기다.

연구진들은 그들이 생활속에서 “가정적인” 느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디자인 수업을 진행했다. 자신의 집을 살리기 위해 애착이 가는 물건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상향으로 꿈꾸는 집을 종이를 접어 만들고 색깔과 무늬로 꾸미게 하는 것이다.

할머니들이 이런 작업을 한다고 선명하게 기억을 되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저장해놓은 내 기억들보다 선명할 수는 없으니까. 대신 그 물건에서 오롯이 이끌어낼 수 있는 추억은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내가 서랍에 넣어놓은 이 기기에 내가 기대하는 바는 “그때 당시의 내가 남긴 기록들의 희미한 그림자”이지 기기 자체가 아니다. 매끈한 액정 사이에서 나 자신을 떠올릴 매개체는 없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폰과 그녀의 아이폰이 다른 게 없는 것처럼. 물성을 잃어버린 추억을 다시 복구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사진을 열더라도 내가 찾고 싶은 그 오롯한 기억을 책갈피 넘기듯 찾아서  복원할 방법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통째로 그 시절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Reference

Lindley, S. andWallace, J. (2015) “Placing in Age: Transitioning to a New Home in Later Life,”ACM Transactions on Computing-Human Interaction, 22(4), Article 20.


여담으로, 이 글은 Evocative Object라는 내 인생의 의미있는 사물들의 독후감입니다. 뒷배경 이미지가 이 책의 영어 원서 표지예요. 원래 에세이들도 재밌고, 글쓴이가 필자들의 글을 엮으면서 인용한 텍스트들도 하나하나 엄청나게 좋습니다. 데리다, 바르트, 바슐라르, 보드리야르라는 철학자들의 이론은 멀게만 느껴졌는데 글하고 같이 엮이니 이렇게 매력적일 수 없어요. 


디지털 시대의 제 글을 본 엮은이는 제 글에 어떤 텍스트를 붙여줄까요. 제일 근접한 텍스트는 이것인거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과거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삶 중에서 일부는 선택되고 일부는 버려진다. 사물의 기록 역시 이처럼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이고르 코피토프, 사물의 문화전기: 과정으로서의 범용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하기에 좋은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