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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Jul 26. 2022

1917, 2019

겪어보지 않아 모르는 것이 수두룩한데 그중에서도 보다 먼 과거의 일이라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우리는 요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지만, 포 소리가 울려 퍼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 서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진주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 혹은 스나이퍼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종종 보았다. 프레임에  미처 다 담기진 못한 참혹한 현실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실제를 지나옴에 지금이 있음을 기억하며 욕심이 낳은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영화의 흐름과 카메라의 걸음은 두 친구를 따라갔지만, 난 그들을 주인공이라 여기고 싶지 않았다. 실제 그 현장에 있던 모두가 주인공이었을 테니 말이다. 숨 막히는 상황 가운데 총을 쥐고 있었던 이도, 참호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이도, 전선을 옮기며 차를 밀던 이도. 진흙을 묻히고 있던 이들 모두 다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필드에게 자꾸 눈이 갔던 게 사실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한 발을 내미는 그에게.


창백하게 질렸다가, 다시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가, 불구덩이 속을 헤집어 다니며 결국 끝끝내 당도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안쓰러워 보였다가 응원하게 되고, 이제 그만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달렸다. 영화의 막바지쯤 푸른 들판에 뛰는 그의 모습이 가장 생각난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또다시 달리는 그 모습이 꾸역꾸역 나아가는 우리네 삶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본래의 목적을 이루었다 생각한 그 순간, 공격 명령이 취소되고 돌아서는 그때도 종결이 아닌, 또 다른 시작과 대기가 이어졌다.  변함없는 상황의 지속이었다. 나무에 기대어 잠시 내뱉었던 스코필드의 숨이 안도의 호흡이었을지, 절망의 한 줌이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나 계속해서 걸어가는 삶, 마지막 페이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 속에서 지치지 않고 그런 삶을 살아내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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