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리 Jul 26. 2022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깊은 우물]

가라앉은 줄로만 알았던,

것들의 부유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

엉켜있는 줄기와 미끈한 감정들 

 사이로 고개를 내어    있을까.

아무도 섣불리 들여다보지 못하는 

깊은 우물엔 안개만 자욱하다.




프랑스 영화는 어딘가 엉뚱하고 사랑스럽다. 파리의 밤거리나 니스와 같은 휴양지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꿈꾸고 맛보게 만들고, 주인공들이 대사를 빠르게 주고받을 때면 그 발음과 어감이 귓속에서 통통 튀는 느낌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불어는 항상 나를 흥미롭게 만들기에 불어권 영화를 볼 때면 대사와 소리에 집중하는 편이다.


마담 프루스트에서 주인공은 말을 하지 않는 캐릭터로 나온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지막 한 장면에서 딱 한 마디의 대사를 한다. "파파"라고. 이 짧은 대사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관통한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말을 하는 않는 주인공 폴은 우연한 사건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게 된다. 식물들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마담의 집에서 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건드리고 마주하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가 손님 대접용으로 꺼낸 홍차와 마들렌은 지나온 시간 저 편에 머물러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 탁자 위에 올려 논다. 매일 이모들과 식사를 하고,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고, 동네 제과점에서 한 가지의 디저트를 먹으며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보내던 폴의 규칙적인 삶은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 균열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는 균열의 틈으로 어린 시절 기억의 왜곡을 바로잡고, 상처를 치유하며 현재의 삶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말한다. "파파"

 


같은 추억과 경험을 공유하지만 서로 기억하는 바가 다른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나에겐 좋은 어떠한 기억이 상대에게는 악몽일 수도 있으니까. 흘러버린 시간만큼 기억이 바래 버려서인지 더 이상 자세한 정황과 이야기보다는 그 당시의 감정들만이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다. 가끔은 기억의 상자에 멈춰있는 사람과 감정들에 곰팡이가 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지만 뚜껑을 열었을 때 다른 곳으로 균이 번질까 두려운 마음도 함께 있다.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

"네 갈길을 그냥 가!"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건넨 쪽지에 쓰여있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추억하지만, 때로는 과거에 붙잡혀 버린 마음이 현재에도 영향을 미칠 때가 부지기수인  같다.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상자를 충분히 들여다보고 파헤쳐 재정리하는 날이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만의 홍차와 마들렌을 꺼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1917,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