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구한 내 하루
요 며칠 사이 개인적인 취향과 사심이 듬뿍 담긴 시간을 보냈다. 여름에 들어선 순간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바쁜 것도 사실이었지만 일과 사람, 그리고 요란한 마음에 치여 오롯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적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만큼 홀로 보내는 시간이 필요한 나에겐 적신호였다. 홀로 산책을 하며 사색하는 시간,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는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일상이 통째로 지워져 버린 느낌이랄까.
불현듯 이대론 안된다는 생각에 4.5일제를 쓰고 미뤄두었던 전시를 보러 갔다. 다양한 목소리로 음악하는 아티스트들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 EBS 스페이스 공감 20주년을 맞아 열린 전시였다. 전시 한 공간에선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우연히 내가 도착했을 때 친구 마움코가 좋아하는 가수인 김사월 편이 틀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움코는 김사월의 공연을 꽤나 자주 혼자 보러 갈 정도로 열정적인 팬이어서 나도 그의 존재와 음악을 알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인터뷰와 공감 무대를 번갈아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한동안 앉아 보고 있었는데, 암흑 속에서 플레이되던 다큐멘터리가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아뿔싸. 스텝의 실수로 선이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곧바로 정적이 흐르게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도 짜증내거나 인상 찌푸리는 일 없이 잠잠히 기다렸다. 억겁 같은 4-5분이 지났을까.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고, 아주 센스 있게 노래의 첫 부분부터 다시 틀어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을 음악에 몸을 흔들며 다시 음악에 젖어들었다.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이상, 1잔에 1시간 이상 머물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간만에 상수역 쪽 영화 컨셉의 카페에 들렀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서 기다리는데 주인이 옆자리 손님에게 와 말했다. “손님, 꽤나 오랜 시간 머물고 계신데 음료를 하나 더 시키시거나 이만 가시는 게 어때요?” 그 말을 들은 옆사람의 당황+창피함+어이없음+분노의 감정이 순서대로 그라데이션으로 느껴졌다. 그는 ”네 그냥 갈게요.“ 라고 퉁명스럽게 매장을 나섰다. 바로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내가 다 눈치가 보이고, 커피를 마시는 내내 불편했다.
이후 우연찮게도 같은 주에 정반대의 사건을 겪었다. 휴일이었던 평일 오후. 힙한 노래와 무드가 가득한 동네 단골카페에서 개인 작업을 끝내고 집에 가려고 일어나자 사장님이 말했다. “지금 비가 많이 와서 조금 더 계시다 가면 좋을 거 같아요.” 이미 2시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고, 다음 일정이 있어 일단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우산을 쓰고 담배를 피우던 사장님과 눈이 마주쳐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그때 “이거 쓰고 가세요. 다음에 올 때 돌려주세요.” 라고 말하며 우산을 건네주었다.
일상의 무료함과 분노에 지쳐있던 나는 누군가의 가벼운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여유를 배우고, 카페라는 비슷한 공간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보면서 다정함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침마다 항상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은 대체로 친절하고 다정하게 굴어보자고. 매일 결심을 한다는 건, 굳게 다짐한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 날을 세우지 않고 조금 덜 거친 반응으로 소통하고 싶은데 가끔은 마음과 언어에 까슬까슬함이 묻어 나올 때가 많다. 다정함이 구한 내 하루들처럼 나의 친절함이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가 되고, 그로 인해 감사한 하루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