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소비의 미학은 '할부'로부터

돌아보는 2022년 : 우리 부부의 소비 기록

by 플레이

올해는 결혼도 했겠다 남편과 꾸리는 가정의 첫 해라 필요 이상의 소비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조금이라도 여유 자금을 모아보자 다짐했지만, 1년 치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니 역시나 참 뭘 많이 사긴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모든 것이 꽤나 요긴하게 잘 쓰고 있는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 쌓여가는 서로의 택배 상자를 한심스러운 눈으로 보지 않고 늘 언박싱을 함께 해준 남편에게 오늘도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우리 내년에는 더 많이 Lion.







1. 식기세척기

식세기 이모님, 어서 오시고(319,170원)

신혼집 입주 전 준비했던 혼수 리스트에는 식세기가 없었다. 남편과 나 둘이서 이것저것 잘해 먹긴 하지만 3-4인 가구만큼 식기 양이 많지도 않고, 또 저녁 식사 후에는 꼼꼼한 남편이 설거지를 곧잘 하니 굳이 이걸 사야 하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과거에 허리가 좋지 않아 크게 치료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섬세한 성격 탓에 설거지하는 시간 자체가 짧은 편이 아닌지라 디스크가 무서웠던 나는 결국 식세기를 들였다.


LH 행복주택에 거주하는 신혼부부답게 빌트인 시공은 꿈도 꾸지 않고 고른 미니 식기세척기는 훌륭했다. '이 작은 게 뭐 얼마나 잘 닦이겠어?' 싶었지만 유리컵은 아스토니쉬로 닦은 듯 반짝였고, 반찬을 담아 먹은 그릇은 양념의 흔적 한 점 없이 나를 반겨줬다. 고온 살균 세척이 이렇게나 신세계라니. 왜 그렇게들 식세기를 이모님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이 우려했던 전기세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나는 식세기가 돌아가는 시간 동안 남편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등 다른 것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물론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30분 만에 간단히 끝내는 저온 모드도 있고 소음도 적당하다. 잔류 세제가 걱정된다는 이들도 많지만 손으로 하든 기계로 하든 아주 미세한 잔류는 남을 수밖에 없다. 세제가 걱정이라면 애초에 물로만 닦아야 할지도. 가사노동은 무조건 장비빨이다. 다음 집에선 로봇 청소기를!




2. 에어팟 맥스

비니랑 같이 쓰면 을매나 힙하게요? 눈이 풀린 건 피곤 탓입니다만?(699,000원)

우리 부부는 애플이 사운드에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아이팟 시절부터 애플의 밸런스 잘 잡힌 사운드를 선호해 왔고, 기존의 에어팟 프로와 3세대도 만족스럽게 사용하던 중 남편이 생일선물로 맥스를 사 줄 테니 써보지 않겠냐고 했다. 가까운 매장에서 테스트해보니 역시나 음질은 나무랄 데가 없었고 나는 소니의 WH-1000XM4보다 맥스가 착용감이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맥스의 음질을 두고 커다란 에어팟 프로를 듣는 느낌이라고 많이들 표현하는데, 내가 느낀 바에 의하면 출력도 해상도도 월등히 맥스가 좋다. 이번에도 블루 컬러를 고른 블루러버는 매일 출근길이 신나고요. 날이 추워지니 기본 기능인 '귀도리 모드'도 아주 마음에 든다. 결로 현상에 대해 우려를 많이 했는데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바깥쪽과 안쪽 온도차에 의해 생기는 결로는 어느 헤드폰이든 다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생긴 출근 후 루틴은 커버 팁을 빼서 스탠드에 걸어 놓는 것이다. 닦을 필요도 없다. 한 20분쯤 지나면 알아서 잘 말라있다. 삶의 질이 대폭 상승했는데 뭐 그 정도 물방울이 문제겠어?




3. 후지필름 X-T4, 캐논 eos RP

요즘 바디캡으로 잘 쓰고 있는 빌트록스 23mm


소.니.캐를 모두 경험하고 소니에서 정착하던 나는 이직 후 후지필름의 X-T4로 기변을 했고, 남편은 캐논의 eos RP를 선택했다. 풀프레임 엔트리급 바디인 RP는 사진에 입문한 남편이 쓰기에는 손색이 없었고, 함께 선택한 렌즈 RF 50mm F1.8 STM와 RF 24-105mm F4-7.1 IS STM도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저렴한 셔터음만 빼고.


남편이 RP로 찍은 나와 내가 X-T4로 찍은 남편의 RP.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 @play_archive_

크롭바디만 쓰던 나도 풀프레임 레벨업을 아주 잠시 고민했으나, 상업 촬영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지라 브랜드만 갈아타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간히 부업으로 촬영 일을 하고 있고, 현장에서 스틸 촬영 용도로는 X-T4가 큰 문제가 없이 열심히 일해주고 있다. 보정의 노예에서 하루아침에 해방된 것은 아니나 후지의 다채로운 필름시뮬레이션 시스템 덕분에 간단한 스냅은 보정을 않고 바로 전달한다. 그러나 AF는 너무 아쉽다. X-T4의 출시 당시 포지션은 사진도, 영상도 가능한 모델이었지만 소니를 쓰다 넘어온 나로서는 매번 멍청한 AF에 한숨을 내쉴 뿐. 특히 영상 촬영은 소니를 따라 올 자가 없다. 하지만 사진에 더 집중하자는 목표를 어느 정도 잡고 넘어왔기 때문에 이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4. 브리즘 안경

안경계의 프리미엄을 제대로 맛 봤다(763,000원)

나는 시력교정 수술을 받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지라 이제는 예전만큼 잘 보이지 않고, 남편은 나보다는 시력이 좋지만 난시가 있어 안경을 쓴다. 남편의 안경은 나이에 비해 좀 올드한 느낌이 나는 디자인인데, 나는 그 예쁜 눈을 다 가리는 안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번은 그 틀을 좀 깨 주고 싶어서 싶어서 몇 년 전 남편을 끌고 새 안경을 맞추자며 안경점에 데리고 갔는데, 아니 글쎄 기껏 고른다는 디자인이 기존이랑 별 다르지 않은 카피템이었다. 정말로 테만 까지지 않은 새것으로 바꾼 듯한 느낌. 안경의 알과 테가 작으면 얼굴의 크기가 부각되어 보일 수 있는데(물론 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남편은 이를 극도로 싫어했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안경점에서는 남편의 니즈를 충족할만하면서도 나의 원츠를 반영한 디자인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수제화처럼 안경도 쓰는 사람의 얼굴 형태에 따라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말을 서로 수도 없이 하다가 어느 날 찾아낸 브리즘 안경. 3D 스캐너로 눈 사이의 간격과 코와 귀 높이 등 다양한 기준을 측정한 뒤 테의 소재, 디자인, 색깔을 결정한다. 커스텀인 만큼 비용도 만만치가 않은데 상담받는 과정이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어서 남편 안경만 맞추러 갔다가 엉겁결에 내 안경까지 지르고 말았다. 테가 179,000원에 렌즈도 꽤 비싼 라인으로 선택했더니 둘이서 70만 원이 넘는 매직을 맛봤다. 결제하는데 가격 듣고 순간 내가 아이패드 에어를 산 줄... 제작기간은 2주가 소요되고, 안경은 너무 가벼워 안 쓴듯한 느낌이라 역시 돈이 좋구나 싶다. 양가 부모님도 안경을 쓰셔서 언젠가 한번 모시고 가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아마도 가격을 알게 되신다면 온갖 잔소리가 줄줄이 소시지 엮듯 이어지겠지.




5. HP Pavilion Aero 13

HP 주제에 80만원대

남편에게는 이미 노트북이 한 대 있었지만 게이밍 노트북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그 정도 스펙에 휴대성은 기대할 수 없었던 건지 무거워도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들고 다닐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새로 산 HP의 Pavilion Aero는 가볍고, 예쁘다. 간단히 어떤 점이 좋은지 리뷰해달라고 했더니 장문의 글을 보내줘서 조만간 브런치로 멱살 잡고 끌고 올 예정. 작가 심사에 통과한다면 링크를 추가할 것이다. 하하




6. VSGO 임프 에어 블로워

"예뻐야 돼. 뭐든지." 금자씨가 말했다. (12,000원)

언제 산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오래 쓴 기존의 블로워가 이제는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듯했다. 바람도 약하고 렌즈 표면에 붙은 작은 먼지도 잘 제거가 안되길래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구매한 비스고 블로워. 블로워나 카메라 청소 키트로 유명한 비스고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컬러를 내주다니. 게다가 입구 아래 부분에 작은 필터가 달려 있어서 먼지가 다시 역방향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 준다. 몸뚱이 부분에는 추가 달려 있어서 툭 하고 쳐도 오뚝이처럼 잘 선다.


블루 덕후는 이번에도 역시 블루를. 하지만 깔별로 다 모으고 싶은 걸..




7. GOPRO Hero 10

등산 영상을 찍었으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통으로 날려버림(699,000원)

11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10을 샀다. 폼펙터상의 변화는 크게 없을 것이 뻔했고, 어차피 저조도에서 화질리스는 개선되어 봐야 그 작은 센서의 한계를 넘지 못할 테고, 8을 보낸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10 할인 시기를 기웃거리며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프로가 아이폰보다 별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비교군 자체가 틀렸고요. 액션캠의 기능에 충실한 아이기 때문에 간간히 역동적인 촬영이 필요할 때 씁니다만?


그리고 스냅 촬영할 때 카메라 핫슈 마운트에 장착해서 촬영 과정을 기록 시 고프로만큼 편한 게 또 없기 때문에 냉큼 모셔왔다. 8은 어떻게 촬영이 되고 있는지 전면 LCD에서 볼 수 없었기에 10이 더 마음에 들었고, 하이퍼스무스도 예전 모델에 비해 더 업그레이드 됐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출산한 남편 지인이 아기를 찍을 용도로 고프로를 구입하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했는데 스마트폰 두고 괜한 소비 하지 마시길. 고프로는 액션캠입니다. 아 물론 POV로 애기 걸음마를 담는다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평생 그것만 찍을 것도 아니고...




8. iPhone 14Pro MAX

22개월 무이자 할부 긁은거 나야. (1,610,000원)

남편의 핸드폰 교체 주기는 얼추 3-4년쯤 되는 것 같다. 11Pro를 만 3년 즈음 썼는데 아이클라우드를 써도 기기의 용량이 64GB밖에 되지 않아서 필요 없는 어플을 자주 지워야 했고, 카메라가 바로 켜지지 않는가 하면 가끔 벽돌이 되는 증상도 있었다. 14 시리즈가 발표되고 미친놈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다이내믹 아일랜드를 보며 프로는 피할 수가 없겠구나 싶었는데 매장에서 실물을 보더니 맥스에 꽂혀버렸다. 크고 아름다운 녀석 같으니라고.


맥스의 장점은 크다는 것이고, 단점도 크다는 것이다. 한 번은 누워서 들고 있다가 얼굴로 떨어트려서 많이 아파했는데 아마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겠지. 딥퍼플 컬러가 자칫 올드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네 컬러 중 실물이 제일 나았다. 사전예약 물량이 너무 금방 사라져서 며칠 동안 새로 고침을 끝도 없이 누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퇴근하던 남편의 모습도 참 귀여웠다. 22개월 무이자 할부 긁은 거 나야. 잊지 말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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