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일기 1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단상들을 정리했지만 사실 해시태그 라기보다는 우물 정(井)에 가깝습니다. 주간 일기의 월간 혹은 그 이상의 확장이라고나 할까요.
지난 6월, 기변과 렌추 사이에서 갈등하던 우리 부부는 결국 요단강에 같이 발 한 번 담가보자며 기존에 사용하던 T4와 RP 모두를 정리하고 H2S와 R6M2, 100-400mm 렌즈까지 맞이했다. 매거진에서 근무할 때부터 다양한 브랜드의 플래그십 바디들을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탐해왔지만, 여전히 손의 감각과 정신적 취향 모두 만족시키는 바디는 후지가 유일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마침 H2S를 구매한 사용자 대상으로 렌즈 캐시백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결론적으로는 조금이나마 할인을 받을 수 있었던 소비이다.
그간 T4는 내게 사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일을 떠나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는 것을 정말 오랜만에 느끼게 해 준 바디였고,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피사체의 색감을 찐득하게 표현해 주는 필름시뮬레이션 또한 그동안 갈구해 왔던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꼭 중요한 순간에서 흔들리는 AF에 한숨 쉬는 날이 많았고, 급기야는 중요한 영상을 촬영하는 도중 편집단계에서도 도저히 어쩌지 못할 정도의 클립을 남기고 말았다. 단호하게 말하자면 유저인 나의 세팅 문제가 아니다. 기계의 한계가 맞다. 영혼을 충족시키는 줄 알았던 장점과 등가교환을 하기엔 자체가 단점이 너무 커 합리화가 성립되지 않았다.
게다가 탐조를 시작하고 나니 자연스레 블랙아웃 없이 많은 양의 연속 촬영이 가능하거나 피사체 추적 모드(새) 기능이 있는 바디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구매 전 H2S를 대여해서 테스트 촬영을 해봤는데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특히나 사진을 찍는다기 보다는 드르르륵 갈긴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연사와 AF는 촬영자의 입장에서 무서울 것이 없게끔 만드는데, 결국 출시 당시만 해도 누가 크롭바디에 300을 태우겠냐며 코웃음을 쳤던 나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며 파티클 방향으로 머리를 조아린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조류 작가 없는 거 다 알아요. 가까운 곳에 이 노예가 있답니다?)
남편은 저렴한 셔터음에서 벗어난 것이 꽤나 맘에 드는 모양인지 혼자 출사를 가는 횟수가 늘었다. 사진 전용 계정까지 따로 만들더니 열심히 본인만의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작년보다 도요물떼새들이 조금 일찍 왔다는 커뮤니티에서 소식을 접해 듣고 이번 주말 탐조 계획을 알차게 세우는 중!
7월 초 쌍안경 체험 행사에 갔다가(아니 이분이 왜 여기에… 경악을 금치 못한 나는 그대로) 계단에서 꼬꾸라졌다. 양쪽 발목이 둘 다 꺾이는 바람에 남편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하는 중환자가 되었다가 주 3일 한의원에 출석 도장을 찍었고, 한 달 그리고 보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계단을 내려갈 때를 제외하곤 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됐다.
다친 첫날밤에는 서러움에 북받쳐 엉엉 울기까지 했다. 머리는 걸음을 걸어야지 하고 명령하는데 발목은 벽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 고통은 발목을 지나 정강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이 집에 없을 땐 보조기를 착용하고 목발 대신 장우산을 한 손에 쥐고 내디뎠다. 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차 정형외과에 방문했었는데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의사 선생님은 휠체어를 타셔야 할 것 같은데... 하고 엄청난 겁을 줬다. 양쪽 발목이 둘 다 꺾여서 거동이 불편한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다행히 엑스레이 상으로는 실금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인대도 파열되지 않을 정도로만 다친 것 같다고.
20대 초반에도 발목을 접질린 적이 있었는데, 2주 만에 원상 복귀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엔 정말 정말 많이 아팠다. 혹시나 회복에 도움이 될까 해서 혈행건강에 좋다는 오메가3랑 관절 영양제를 열심히 먹었는데 애초에 이런 건강식품보다는 다치지 않고 매사에 건강할 수 있게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한의원 선생님도 이제 그만 보고 싶어요.
결혼 전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거의 매년 여름휴가는 강원도에서 보냈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시원하고 선명한 구름의 모양도 남다르다. 올해는 경포호에서 잠시 탐조를 하고 이국적인 횡계리에서 묵은 후 월정사 대나무숲에서 또 탐조를 했다.
강원도라 나름 맹금류 하나쯤은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있었지만 아침부터 서둘러 나섰음에도 동네 공원에 자주 출몰하는 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전나무숲에서 남편은 종추가 목적이 아니니 좀 새를 천천히 관찰해 보자고 했다.
새들을 찍다 보면 종종 정확하게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큰 새들은 '뭘 봐, 카메라 안 치우냐?' 하는 느낌이고 작은 새들은 '녜?? 지금 저 띡는고애옹?'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손바닥 반도 안 되는 크기의 녀석들은 참 귀엽고, 또 귀엽다.
어쩌면 둘이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휴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노후에 강원도에서 옥수수 농사나 지으며 살자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먼 미래가 아닐지 모른다. 적당히 농사를 지으며 새들과 흥얼긍얼 살 수 있기를.
똑같은 ‘포장’이지만 배달음식을 준비해 온 다회용기에 담아달라 요청하는 것은 카페에서 텀블러를 꺼내는 것보다 더 큰 담력이 필요하다. 유난스러운 이로 비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혹여나 위생이나 번거로움 등 다양한 이유로 거절당하지 않을까 싶은 우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민망해지는 두 손. 하지만 대부분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이들이 말하듯 그 모든 걱정들은 3초면 사라진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최근 구독하게 된 유튜버 #쓰레기왕국 의 영상을 보고 남편과 함께 다회용기를 챙겨 떡볶이집에 방문한 것. 따끈따끈한 떡볶이 위에 튀김을 올리고 뚜껑을 닫아 집에 오니 신기하게도 이 요리가 진짜 내 것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먹다 남은 것은 그대로 다시 닫아 냉동실에 넣고, 다 먹은 용기는 설거지를 해 식기건조대 위에 두니 정말 너무 간편했다. 배출할 쓰레기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번거로움 마저 사라졌다. 어쩌면 이렇게 좋을 수가.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보자고, 집에 쟁여둔 화장솜을 다 쓰면 다음엔 다회용 화장솜을 구입해 볼 예정이다.
150-600mm 렌즈를 대여해 촬영한 직박구리 사진이 후지필름 유저위크 포토페스타 2023 전시회에 걸리게 됐다. <100인의 사진일기>가 메인 테마인 전시는 아니지만 올나이츠 인천 프로젝트 이후 온라인이 아닌 첫 오프라인 전시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안 본 눈을 사고 싶었던 망작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빛나던 걸작! 이 맛에 영화제를 다닌다. 연례행사로 늘 가던 부산과는 달리 5년 전 아카데미 일정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아쉬움 때문에 그 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제천이었는데 이번엔 부산 개막 전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달까. 하루라도 빨리 국내 정식 개봉이 이뤄졌으면 하는 좋은 보물을 마음에 담고, 내년에도 또 좋은 작품들과 함께 필름콘서트를 감상하리란 약속! 꾹!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상을 받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사진 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얼떨결에 준비하게 된 자격증 시험이지만 과정이 참 놀랍다. 당연히 민간인 줄 알았는데 국가 기술 자격증이라는 것에 한 번 놀랐고, 이 자격증을 가진 작가를 1도 못 봤는데 의외로 자격을 요구하는 입찰 사업이 있어서 두 번 놀랐다.
물론 올해 당장 사업자 등록 계획이 없고, 입찰을 받을 수도 없지만 앞으로 정부 산하 기관과 컨택하려면 따 두는 게 실보다는 득이 될게 뻔하니 필기시험 한 달을 앞두고 급하게 벼락치기를 해 본다. 와중에 다행인 건 이론은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는 점. 실기 시험은 오두막으로 진행된다는 정보를 얼핏 들었는데 그 무거운 녀석을 손에 들어본 게 너무 오래전이라 아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에 충실한 테크닉을 요하는 촬영인 듯하다. 실기 시험은 10월에 진행될 예정. 이번 10월은 정말 바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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