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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 Nov 02. 2023

9월과 10월

확장일기 2

일상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로 단상들을 정리했지만 사실 해시태그 라기보다는 우물 정(井)에 가깝습니다. 주간 일기의 월간 혹은 그 이상의 확장이라고나 할까요.



#춘천_가는_엄형차는

   엄형투어 당일치기로 춘천에 다녀왔다. 남양주에서 간소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제이드가든에서 두어 시간. 남편의 먹지도를 돌아보며 '애정하던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보내고 저녁으로는 꼭 닭갈비를 먹자'는 무언의 약속 같은 계획을 세워뒀지만 역시나 가는 날이 (또?) 장날이라고 막국수 집은 닫혀 있었다. 입구 멀찍이에 휴무 팻말을 세워두신 덕분에 주차장 구경도 못 하고 차를 돌렸는데, 출발할 때부터 "분명 춘천에서 먹는 막국수인데 이건 봉평의 노스탤지어가 잔향처럼 스쳐가는 맛"이라고 묘사를 해서인지 뒷좌석에서도 아아, 하고 탄식이 이어졌다.


그날 먹지 못한 막국수는 이런 비주얼을 가졌습니다. @eat_map_mnj를 팔로우하고 더 많은 먹지도를 확인하세...

   토요일이 휴무라니요. 그럼 그동안 우리는 토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 왔다는 거야? 그것도 놀랍다. 그나마 닭갈비라도 먹어서 다행… 올미닭갈비는 남편과 갈 때마다 누구를 데려와야(사리를 종류별로 추가) 하나 고민했는데 역시 이 멤버와 함께 하는 먹지도 훑기는 비교적 성공적이구나. 당일 투어 덕분에 <출사의 맛> 원고를 한 편 더 채울 수 있었고, 10월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달리는_느낌이_이상하게_좋단말야

   9월 중순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러닝이 생전 처음인 몸뚱이는 아니지만 결혼식 이후 무려 11kg나 증량된 몸뚱이였으니 갑자기 뛰었다가 어디라도 하나 잘 못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처음 삼 일간은 파워워킹을 반복하다가 30초간 뛰고, 다시 걷고, 또 뛰고를 반복했다. 4일째부터는 런데이 앱을 쓰기 시작했고 5분 워밍업 후 2분 걷기 1분 뛰기. 총 5-6세트를 반복했다. 러닝에 대한 지금까지의 경험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뛸까? 뛰어질까? 했던 내가 뛰네?로 바뀌더니 왜 더 못 뛰어요? 나 안 아픈데? 가 되어버림'이다. 7월에 다쳤던 발목은 다 나았는데 한의원에선 아직 완벽하게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엉뚱한 곳에 힘을 주다 보니 발등이 아픈 것이라 추정했고, 나는 러닝화가 너무 끼는 게 아닌가 싶어 끈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거 뭐 몇 번 뛰었다고 아플 리가 없어. 분명해.


내가 고른 러닝화는 칼발들만 신는다는 모델이었다. 나는 내가 발등이 높은 줄도 몰랐네?

   계속 뛰고 싶은데 의사 선생님보다는 남편님 눈치가 보여서 러닝은 한 며칠 쉬었고, 그 틈에 나름 보강운동이라고 사이클도 타고 스쿼트도 열심히 했다. 이제 발등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발목 컨디션도 최상급. 요 며칠 다른 일정으로 러닝을 쉬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다. 추워졌어 그새! 땀복 두꺼운 걸로 바꿔야지 낄낄



#정리의_노예

   사람이 너무 편한 것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고, 지난 4월 즈음부터 찍은 사진 파일을 아이패드로만 쓱 보고 두어 장 보정해서 사진 계정에 손쉽게 업로드하는 날들을 줄곧 보내다 10월 중순부터 그 대가를 호되게 치르고 있다. 특히 탐조 나가서 연사는 또 왜 이렇게 자주 남발한 것인지. 빠르게 움직이는 새들을 포착할 때엔 정말 좋은 기능이지만, 이것 역시 편하고 좋다고 굳이 움직임이 적은 피사체에까지 너무 남용하지 말아야… 아니 잠깐 기능이 무슨 죄야? 게을러터져서 이 결과를 초래한 건 나잖아?

게다가 영상 편집도 너무 밀려있었고요

   JPG만 3천 장이 훌쩍 넘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RAW는 엄두도 안 나서 보정은 생략하자는 타협을 했다. 후지를 믿자.... 후지를... 촬영 후 당일날 데이터를 정리하는 루틴을 반드시 지키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뭐 달리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떠오르지 않네요. 부럽습니다.


 

#여보_고마워❤️

   아무리 바빠도 잠깐이라도 가서 한두 편의 영화는 꼭 보고, 현장의 기운을 느끼고, 그 기억으로 또 1년을 버티던 나에게 남편이 엄청난 선물을 해 줬다. 부산국제영화제 3박 4일 일정. 늘 당일, 길어야 1박 2일의 시간만 보내고 온 지라 "3박 4일"이라는 시간은 하늘연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도, 여정 쌤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뜨는 시간에 밥을 먹으면서도, 아침에 해운대에서 눈을 뜨면서도 이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못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형언할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했어.


   부산의 성수기는 10월임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8월 말 호텔 예약을 완료했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티켓팅에 임했다. 매년 티켓팅 전쟁에서 살아남은 전력을 가진 이 용병은 퇴근 후 귀가한 남편에게 총 11편의 영화에 예매를 성공했다는 승전보를 전했다.


더 많은 사진은 @play_archive_

   영화에만 집중하는 것이 이번 일정의 가장 큰 목표였지만 퀄리티 대비 너무 저렴한 가격에 행복했던 호텔 조식, 영다사에서 받은 커피, 남편이랑 함께 오지 못해 슬펐던 콩카페 반미, 영화제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돌비까지 잘 챙겨 먹었다. 굿즈도 알차게 샀고(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굿즈를 하나도 안 사서 너무 놀라웠다), 센텀에서 그동안 애정 하던 많은 브랜드를 구경하며 침도 흘렸지. 그리고 나는 늘 갈망하던 왁싱을 받았다. 일정의 대미를 장식한 브라질리언!



#Opus

   작년 이맘 즈음 이원 생중계로 부산을 찾은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적 경험’ 대해 이야기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 시점에서 개봉을 앞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신의 작품은 굳건하다는 의지를 투영한 답변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험과 통용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6년 전 내가 처음 부산에 왔을 때 류이치 사카모토는 개막식 현장에서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고,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연주했다.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그의 음악을 눈과 귀에 한껏 담고 싶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은 채 3분여를 보냈던 그때의 나는, 대상을 보고 형태를 느꼈음에도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서 영화제가 끝나고도 한동안 멍한 채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날 마주한 스크린 속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야위어 있었고, 손은 담담하지만 그 끝에서 작게 일렁이던 감정이 너울로 번지는 모습 역시 그때와 같았다. 달리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나는 이곳에 있다는 것을. 차지도 넘치지도 않을 그는 내게 그렇게 인지시키더니 이내 사라졌다. 스크린 밖이 아닌 안에서. 지난 6년을 톺아보기에 103분이 충분했다고는 할 수 없겠다. 하지만 이곳에서 영화적 경험이 벌어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이것을 발판 삼아 계속 삶을 유영해야 한다는 것 역시 명확해졌다. 덕분에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오롯이 여기며.



#영화적경험

   먼저 떠난 이를 스크린으로 다시 만나는 것과 늘 스크린으로만 보던 이를 실제로 만나는 것, 그리고 다시 또 스크린으로. <액터스 하우스>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진리에게>를 통해 사이클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영화적경험이 꽤나 오랫동안 내 안에서 회자될 이야기가 분명하다. 늘 이맘때 부산에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 무기력했는데 이제는 그 공허함 마저 영화적경험의 일환이라 치부한다.




#서른_두살_생일

   전날엔 시부모님과 미역국 정찬을 먹고, 당일은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단둘이 쇼핑을 하며 보냈다. 늘 운동과 운동복에 진심인 엄마를 데카트론으로 안내 한 건 정말 잘한 일! 모녀는 떨어져 살다 보니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엄마에게 더 이상 짜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소한 부탁 하나에도 온몸에서 나 지금 불만이 가득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던 자식새끼가 어쩌다 이리 애틋한 눈빛으로 엄마를 대하게 됐을까. 정부에서 기혼여성 거주 단지에만 약을 푼 게 분명하다.


가자미 미역국이 이토록 맛있는 줄 알았더라면 돌 때부터 달라고 칭얼거렸을게야

   10월의 남편은 주말에도 휴무 없이 출근하는지라 저녁엔 집에서 쉬게 해 주고 싶었는데 고기 썰을 오늘만을 기다리신 듯하다. 덕분에 잘 먹고 잘 놀고,



#이행완료_하나

   몇 년을 계획… 아니 미뤄왔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드디어 응모를 했다. 사실 4년 전 브런치에 처음 작가 심사를 통과했을 때부터 등단을 꿈꿔왔지만 초반엔 자신이 없었고, 몇 년 지나니 자신감은 붙었는데 글감의 양이 너무 부족했고, 작년엔 쌓인 글은 많았지만 다듬고 정리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잉여 시간까지 많았는데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원고 하나를 그것도 5개월이나 퇴고를 밀어두더니 결국 공모 마감 일주일 전부터 수정을 해가며 분량도 더 추가했고, 역시나 마감 하루 전에 지원했다.


목차 우겨넣기 신공

   매년 수상작들은 워낙 훌륭한 작가들이 많아서 좋은 기대하긴 힘들 것 같고, 작년에 K선배 덕분에 매거진에서 판을 벌릴 수 있었던 <출사의 맛>이 이렇게 그것도 혼자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자 이제 슬슬 다음 작당 모의를 위한 준비를 해 볼까나



#이행완료_둘

   크몽에 촬영 서비스 승인이 됐다. 반려까지 될 정도로 절차가 꽤나 까다로워서 야 정말 너무한다 소리가 나왔는데 두 번째 시도 끝에 성공했다. 물론 이게 된다고 일이 줄줄이 소시지 엮듯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찍고 쓰고 만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초석이라고나 할까.


언제든 문의 주세요 카메라매거진 출신답게 최상의 퀄리티로 모십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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