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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M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No Time to Die>의 새 음악감독 Hans Zimmer

by 플레이

이번에도 토머스 뉴먼이 음악을 맡는다는 기사를 본 게 아마도 햇수로 약 3년쯤 전의 일이다. <No Time to Die>라는 제목이 공개되기 전 '본드 25'라는 가제를 쓸 당시였으니 말이다. 그 사이 영화는 빠른 속도로 제작이 되었고 개봉까지 약 3개월이 남은 시점이니, 어느새 영화는 후반 작업 단계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음악감독이 교체되는 것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상업영화는 감독의 의견이나 인연과는 별개로 배급사나 제작사(그러니까 돈을 쥐고 있는 there.)에서 선호하는 작곡가를 내정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번 기사에서 언급된 '제작사와 음악적 견해'도 자주 있는 케이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이유는, 음악감독을 교체한다는 소식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름 아닌 한스 짐머가 올랐 때문이다. (물론 내 기억 속에 자리하던 뉴먼은 온데간데없고 지금껏 작업하던 음악감독이 댄 로머였다는 사실도 꽤나 충격이었지만)


007 시리즈는 그간 많은 음악감독들의 손을 거쳤다. 1962년의 <Dr. No>부터 2015년 개봉한 <Spectre>까지 송 타이틀을 작업에 참여한 뮤지션을 제외하고 스코어를 담당한 음악감독만 총 12명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작업 중간에 음악감독이 교체된 경우는 없었다. 존 배리를 포함하여 여러 편의 시리즈를 역임한 음악감독도 여럿 있었으니 호흡이 잘 맞으면 계속 가고, 아닌 경우 다음 시리즈부터 새 음악감독을 채용하는 방식이었다고 미루어 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여러 명의, 곡을 쓴 작곡가가 서로 달라도 음악에서 개연성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리즈물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특성이다. 필자와 같은 덕후들이 Main Theme을 차용한 Under Score에서 희열을 느끼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50년이 넘도록 이어진 시리즈는 음악에서도 동일한 서사를 이어갔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토머스 뉴먼이 맡은 <Skyfall>(2012), <Spectre>(2015)는 음악의 분위기가 전작과 확연히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Main Theme를 활용하는 것은 이전까지의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이 여전했지만 "skyfall"(Adele의 그 곡 아님), "Donna Lucia" 등의 곡처럼 공허하면서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듯 무겁게 연출한 순간이 많았다. 패드의 사운드와 현악기군의 촘촘하지 않은 구성으로 주선율 프레이즈가 여운이 길기 때문에 비 온 뒤 우중충해진 영국의 안개 낀 날씨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이는 분명 극 중 본드라는 인물이 겪는 내면의 갈등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Skyfall>에서 한밤 머니 페니가 찾아와 본드에게 면도를 해주는 장면에서 본드를 'old dog' 비유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애당초 본드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만들어져 영구적 삶을 살아가는 히어로가 아니니 이를 연출하는 것은 어쩌면 007 시리즈가 계속됨에 따라 꼭 거쳐야 할 관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한스 짐머 얘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웬 딴소리인가 싶겠지만 이것이 곧 음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 <캐리비안의 해적>, <셜록 홈스> 등의 시리즈를 작업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분명 이번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큰 강점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가 작업했던 영화의 십중팔구는 블록버스터이니 이런 장르의 음악을 맡는 것은 그에게 누워서 떡먹기 수준의 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이제껏 다른 영화에서 보여준 웅장한 음악 스타일(떼현, fx 베이스 등)을 돌아봤을 때, MGM의 선택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Skyfall>과 <Spectre>에서 토머스 뉴먼이 보여준 음악은 <Quantum of Solace>(2008)까지의 시리즈와 분명 차이가 있었고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의 솔 덴(Sölden)등 영화 촬영지의 배경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스 짐머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지역적 특색을 반영한 민속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에서부터 로컬 장르를 느낄 수 있게 한 영화들이 많았지만 토머스 뉴먼이 보여준 '여백의 '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음악'은 영화라는 '종합 예술' 안에 들어가는 '부속물'이고, 영화라는 주제의 전제 하에 맞게 작업이 이루어지니 시나리오의 전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겠지만, 만약 <No Time to Die>에서 본드가 겪는 위기가 <Skyfall>이 나오기 이전 시리즈와 같이 단순히 빌런과의 대립에서만 겪는 일종의 '사건'에 지나지 않고 본드 내면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인 소재들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씬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만큼은 한스 짐머 특유의 웅장한 음악 스타일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필자에겐 그가 007의 마지막 시리즈인 <No Time to Die>의 음악을 과연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동시에 혹여나 이 거장이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공존한다. 개봉 후 상영관을 나올 때 ‘역시 괜한 걱정을 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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