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기쁨발전소 화부 이주환
Oct 10. 2022
휴 지 통
휴지통은 성자이다. 구겨지고 더러워지고 상처 난 모든 것을 받아준다.
누구나 휴지통 하나 달고 산다.
젖먹이 때 말할 것도 없이
쉬나 응가 뭍은 기저귀가 들어있고 어려서는 코 뭍은 과자봉지가 가득 찼으리라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막대와
눈 오는 겨울밤 오롯이 까먹던 군밤 껍질이 수북이 쌓이기도 했고 조금 더 자라서는 공허한 마음을 채우던 꾸깃한 담뱃갑이
내 던져져 있을 것이고 때로 메마른 가슴을 적시던 소주병이 뒹굴었으리라
조금 지저분한 일이지만 휴지통을 뒤져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철자가 틀려 꾸낏꾸깃해도
여전히 푸르른 연서에는 첫사랑의 싱그런 기쁨이 배어있고 아무렇게나 쓰인 낙서에는 젊은 날의 고민과 방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눈물 젖은 편지에는 이별의 아픔과 상처가 물들어 있다.
직장에서 상사가 내 팽개친 서류에 구겨진 내 자존심과 함께 처박혀 있기도 하다.
나이 먹고 세월가도
내 마음의 휴지통에는 정리안 된
과거의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지금도 미래의 걱정이라는
스팸메일이 여기저기 처박혀있다.
휴지통이 대견한 건 비우기 귀찮아
각종 쓰레기가 넘쳐나도 꾹꾹 눌러 담으면 얼마든지 더 들어가는 넉넉한 포용력이다.
아무튼 휴지통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을 보여준다. 착하고 아름다운 동반자이다.
언젠가 내 인생의 휴지통을 탈탈 털어낼 때
아이들 콧물 닦아준 휴지 몇 장과
몰래 넣어둔 다른 이의 슬픔 젖은 손수건과 사람들이 남긴 오물이 덕지덕지한 걸레조각이 나왔으면 좋겠다.
부패한 정치인과 타락한 종교인들의 더러운
죄들도 모아 모아 불타는 소각로에 같이 넣으면
바램이 없을 것 같다.
빈 휴지통에는
한 줌 고향 흙 담아 아들에 베란다에 두면
갈 곳 없는 민들레 홀씨 살포시 내려앉으리라.
이듬해 봄에는 벙근 꽃망울이 폭죽처럼 터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