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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회복과 세상속의 교회

<독후감>         

복음의 회복과 세상속의 교회     

-채영삼 지음/이레서원/2021년    

 

□ 들어가면서     


이 책은 성경 특히 신약에 기초한 기독론과 복음론 그리고 교회론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신약학자이자 교수로서 신약에 대한 이해가 깊은 분이다. 구약을 신약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맞는 말이다. 구약은 그림자요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의 실체이기에...     

이 책은 저자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무엇인가? 복음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인가? 성도의 삶은 어떻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한국교회를 관찰하며 질문하고 고뇌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현대의 한국교회와 성도의 삶에 대한 현주소가 담겨있다.      

사람은 누구나 부분적이다. 전체를 볼 수 없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는 만큼 볼 수 있다. 

믿음도 하나님이 부어주신 분량만큼 소유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 한국교회의 복음은 왜곡된 복음 즉, 보고싶은 것만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고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기초에 머무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성경도 히브리서 6장에 1절과 2절에 ‘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 지니라.“고 권면하고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과 정작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싶은 것 그가 진정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꿀이 줄줄흐르는 눈빛으로 나누는 연인처럼 사랑이 묻어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처럼....     


□ 내용을 보면    

 

◯ 예수와 복:      


우리는 예수를 믿고나서 그 어떤 것을 더 바란다.이 더가 문제다. 더는 덫이다.에덴동산으로 충분한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더’ 이다. 이 더가 십가가를 잘못 보게한다. 십자가가 플러스로만 보이는 것이다. 하나 또는 한 쪽 눈으로만 보면 균형을 잃게된다. 십자가는 예수와 함께 보야야 한다. 그래야 전체로 보인다. 먼저 수평으로 된 마이너스처럼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빼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 사랑과  자신의 소유를 빼는(버리는) 형제 사랑의 실천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예수님이 계신 현주소, 보좌 우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예수는 지금 십자가에 없다. 하나님 우편 하늘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천국으로 가는 문이다. 집 안에 들어갈 때 문이나 현관에 앉아 있는 사람은 집안 식구가 아니다. 피난 온 앞집 여자다. 우리는 자기의 힘을 빼고 가진 것을 버리고 비우는 마이너스(수평적 관계의 선행)를 행함으로 위로 연결된 수직선을 따라 그 분의 보좌 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럴 때 보좌에 계신 그 분과 하나되는 영적물리학 양자역학의 둘이 하나되는 중첩과 교류하는 얽힘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예배이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먼저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말씀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형제와의 관계회복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는 이 땅이 그 무엇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복’이라고 강조한다.

사실이다. 백퍼 공감한다.어느 덧 10월이다. 김동규와 조수미가 듀엣으로 부르는 ‘10월의 멋진 날에’라는 가곡이 있다. 나는 이 노래말중에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없어. 바램은 죄가 될테니까” 가 있다.나는 이 가사가 진리라고 믿는다. 예수와 함께하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은 365일 중 한 날이 아니다. 그 분이 오시는 그 날까지 날마다이다. 바로 오늘이고 지금이다.     


◯ 교회란?     


교회란(卵)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란(亂)이다. 교회에 나와 세상속에 살면서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 평안과 기쁨을 얻어야하는데 교회가 분란의 근원이다. 혹 떼러 왔다가 더 큰 혹을 붙이고 가는 형국이다. 재미도 의미도 보람도 없다. 시간 뺏기고 돈 뺏긴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교회를 찿겠는가? 교인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특히 젊은이과 청소년들의 경우는 더하다. 비대면의 일상화라는 위기상황이다.성도간에 대면해도 데면데면하다. 세상속의 교회가 그리고 성도가 복음으로 온전히 회복되지 않는 한 이 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이 있어야한다. 무엇보다 그 분과 대면하는 감격과 감동이 있어야한다.    

 

◯ 소망의 이유     


믿음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말세의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딤후 3장1~) 

세상은 원래 그렇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변하지 않는다. 얼룩말의 얼룩처럼 지울 수 없다.

자연스러운 속성이고 특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종 인간들의 종말의 날을 미루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남은 자들과 그루터기처럼 교회를 남겨두신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인류)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구원사역에 우리를 쓰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것보다 더 확고하고 강하게 하나님은 자신을 믿고 우리를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을 믿는다고? 개가 웃을 일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믿는 것은 그들이 온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일향 미쁘신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그 분의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자녀들과 청년들과 아비들에게 말이다.

     

소망은 목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목표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예수 믿는 것이 ‘잘되는 나’, ‘행복한 나’가 목적이 되었다. 단연코 잘되고 행복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아닌 나 자신만의 잘 됨은 왜곡이고 변질이다. 부패와 타락의 첫 단추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을 잘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에게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으시다.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밝혀진다. 과정에서도 왠지 불편하다. 

갈등이 일어난다. 시끄럽다. 끝이 좋을 수 없다.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려는 김삼환 목사는 거룩한 강단에서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은 간첩이고 총살감이라고 말했다. 내가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았다.“나를 먼저 총살하라!” 교회앞에서 일일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교단이 총회에서 정리하지 못하면(이미 물건너 갔지만) 세상법정이 정리할 것이고 그것도 안되면 하나님이 직접 치리하실 것이다. 주인이 아닌 자가 주인행세하는 것은 도적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아간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말로를 보라

시퍼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진정한 교회의 주인이시오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기에 그 분의 식과 법으로 다스린다.     


소망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바라보는 능력이다. 믿음은 그 분께 나아가는 에너지이다. 기도는 적극적인 믿음의 행위이다. 사랑은 진정한 소망을 향해 믿음의 능력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이 세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는 복음의 삼위일체이다.     


◯ 형제사랑

     

예수님은 우리를 형제로 대하신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죄인 그것도 자기를 죽게 만든 죄인인 우리를 형제로 여기신다고? 믿기 어려운 스토리이다. 그런데 그런 대우를 받는 우리는 어떻한가? 형제를 주 안에서 형제를 죄인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교회에 조금 더 오래다녔다고 직분이 있다고 우월감에 빠지지 않는가? 아무런 위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계하고 위험한 대상으로 보고있지는 않는가? TMI 운운하면서...     

저자는 형제사랑과 이웃사랑이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증이라고 밝힌다. 

맞는 이야기이다. 복음의 시작은 용서이고 복음의 완성은 선한 행동이다. 결국 사랑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존재이기를 바란다. 신적인 성품을 가진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인을 찿고 있다. “저 사람을 예수님 꼭 닮았어”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나도 이 율법의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잣대를 들이 댄다. 말은 안해도 표현은 안해도 속으로 화가 나고 분노가 치민다. 특히 예수믿는 다고 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며 사기치는 인간들에게 더 끓어오른다. 하지만 한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에 거론한 명성교회 원로목사도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에 기쁨이 하나도 없다. 긴장이 가득하다. 마귀의 형상이다.노년 특히 말년에 예수를 잘 믿고 평안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회개하기를 바랄 뿐이다.     


◯ 성장에서 성숙으로  

   

한국도 한국교회도 성장이 모델이 되는 시점은 지난 것 같다. 성장은 좋은 것이다. 축복이다.그러나 이 축복이 저주가 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우 리가 생각하나 행동하나 잘못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이 소돔이 되게한다. 다윗의 경우도 권력의 정점에서 실수하여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하다. 자신을 물론 가정과 나라(공동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기때문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을 인용한다. 주는 우리를 믿기에 당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성도와 교회는 선행 행실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케하는 교회는 성숙한 성도들이 만들어간다. 하나님이 주신 특권과 사명을 깨달은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요 예수를 닮은 성숙한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큰 교회요 강한교회이다.

     

□ 내가 느낀 점

     

한마디로 한 몸인 교회공동체이다.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오, 당회는 중추신경, 제직회는 골근격계, 각 부서는 장기 그리고 순모임은 말초신경일 것이다. 건강의 원리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잘 배설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깨끗한 피이다. 그리고 피의 흐름이 원활해야한다. 말단에 피가 잘 돌지않으면 왠지 거북하고 어정쩡하다. 중추신경은 이 말단의 피가 잘 흐르도록 회로가 작동해야한다. 교회 구성원들이 강한 면역세포와 힘있는 건강한 몸이 되어 면역력이 약한 세포들을 돌보아야한다. 우리교회가 전 지구적 약자와 생태계를 섬기는 백혈구들로 구성된 강한 군대가 되었으면 한다.

     

□ 나오면서

     

복음의 길은 완전하다. 행복을 목적으로 하지않지만 그 길에는 지극한 행복인 평안과 기쁨이 함께한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고 어떤 길을 따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몫은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얼마전 장로고시 시험지를 받고 이름과 소속을 쓰고나서 시험지의 맨 위 백지에 

‘고통은 내가 영광은 그가’라고 적었다. 문제에 나온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속에서 너 어떤 장로가 될래? 이런 질문이 떠올랐고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스스로 적은 것이다.      

미 해병에 장교에게는 한 가지 금언이 있다. “고기가 나오면 장교는 맨 나중에 뼈를 핧아먹는다. 졸병부터 배부르게 한다.”이다. 나는 장로 장립을 앞두고 이 말은 하고 싶다.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장로(주의 종)와 그의 기도 그리고 선행이다.” 

날마다 주로 인해 설레게 하시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 안에 거하면 두 가지가 불가능해진다. 첫째, 굶어 죽는 것 둘째, 절망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안(샬롬)을 누리는 살놈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안한 이유는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로 모두 이루신 율법과 죄로부터 해방,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영생과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나는 경험적으로 이것을 안다. 절대 부인할 수 없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知足常樂.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세상을 다 주어도 절대로 안바꿀 것이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주와 함께 죽고 그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사는 것이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인 제데카와 미쉬파트 그리고 헤세드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삶

내 안에서 복음이 회복된 세상속의 교회가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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