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과정(1)
글쓰기의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지 구상을 하고, 그 내용을 글로써 표현을 하고, 표현한 내용을 고쳐쓰는 과정입니다. 즉, 구상, 표현, 퇴고의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각 단계는 글을 완성한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구상입니다. 무언가 써야 할 제목이나 주제가 정해지면 바로 글쓰기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꽤 있을 듯 합니다. 실제로 독자의 눈에 보여지는 것은 결과물이지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짓는 것처럼 상당히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한 문장이 넘는 글을 순간부터, 무엇을 쓸지 고민을 한 후 글을 써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튼튼한 집을 짓는 과정과 같습니다. 설계도는 구체적일 수록 좋습니다. 실제에 적용했을 때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이면 더욱 좋습니다. 글의 윤곽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표현의 과정은 매우 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경우, 작품을 쓰기 전에 매우 많은 준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물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자료 조사, 그리고 세부사항을 어떻게 전개할지를 미리 계획한 후에,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가 작품을 쓰는 행위는 이미 골격을 갖춘 작품에 살을 더하는 과정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그가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 보통의 작가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상의 과정을 얼마만큼의 깊이로 접근할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습니다. 주제 의식 정도만 큰 그림으로 갖고, 바로 글쓰기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글쓰기라는 결과에 닿기 위한 설계도 내지 지도라 할 수 있는 구상의 과정이 치밀할 수록 표현의 과정은 더 명확하고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글을 쓰는 과정에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끝에 닿지 못한 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그 문제는 구상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인상적인 표현은 그 작품 안에서 오랜 시간 독자를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그 영향력을 헤아려서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입니다. 작품은 독자가 텍스트를 읽고 작품과 교감하는 순간, 완성됩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 중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계몽사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에 그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 첫 문장을 읽고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만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설국>에서 인물의 내면은 각 장면에 대한 묘사를 통해 비유적으로 담겨집니다. 장면이나 인물의 행동에 대한 관찰도 매우 섬세합니다. 문장이 매우 아름다워서 번역본이 아닌 원문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작품을 읽기 전에는 작품이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근원에는 초등학교 때 읽었던 펄벅의 <대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이 <설국>을 읽고 나서 바뀐 것입니다. 문학은 예술이고 아름다워야 하며 그 미학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문학이 정치나 역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닿게 됩니다. 물론,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읽으며 느낀 전율은 작가가 자신의 시선으로 시대적 현실을 바라보는 것의 유의미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작품성의 근간이 정치나 역사 그 자체가 아니기에 가능합니다. 작품을 읽으며 독자는 현실의 문제를 인식하지만 결코 그것이 작가가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은 아닙니다. <분노의 포도>를 읽을 때, 독자는 작가가 만든 넓은 프리즘을 통해 현상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는 문제를 주장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독자가 보고 느끼며 깨닫게 합니다. 이렇듯 표현의 차이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