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과정(2)
마음을 움직이는 표현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진실해야 합니다. 단순하고도 명료한 표현으로 진심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사회생활은 솔직함을 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예의상 하는 말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은 좋은 글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어느 작가처럼 풍부한 표현으로 정확한 문장을 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표현이 서툴다고 느껴질 때는 바로 이러한 순간들입니다. 쓰는 이의 현재 내면과 글이 동떨어져 있거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낼 정확한 문장을 찾지 못한 경우입니다. 시의 경우, 특히, 시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러한 경우를 나타냅니다. 지금 시인이 느끼는 바를 시로서 표현하고 하는 마음이 있을 때, 그에 적합한 표현으로 드러내는 것이 시입니다. 시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물론, 소설이나 어느 글에서든 군더더기 없이 필수요소로 채워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시의 경우, 이러한 기준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한 단어에서 여러 의미가 함축적으로 부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어느 장면은 객관적 사실의 묘사일 수 있습니다. 물론 작품 전체에서 그 장면이 다른 장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품 주제를 전달할 수 있겠지만, 모든 문장이 내면을 담지는 않습니다. 특히, 논설문처럼 사실적인 글들의 경우 작가의 진심보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뒷받침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장르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학적인 글들이나 개인 간에 주고 받는 편지글의 경우에 진심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느끼지 않은 것을 표현하는 것은 마음에 스미지 않고 겉돌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그러한 진심을 담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이 부분이 매끄럽기 위해서는 독서와 습작이 필요합니다. 풍부한 표현은 다독 이외의 방식으로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에 속하지만, 결국 활자라는 오래된 수단을 사용하며 기존의 표현 양식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에 축적된 표현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된 글은 끝으로 고쳐쓰기, 즉, 퇴고의 과정을 거칩니다. 퇴고의 과정은 길수도 짧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구성이 잘 짜여진 상태에서, 풍부한 표현으로 글을 썼다면, 퇴고의 과정은 단순히 오탈자를 고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조차 독서력이 충분히 갖춰진 사람이 기본 어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썼다면 거의 큰 문제 없이 퇴고 과정이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의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면 퇴고의 과정은 험난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제의식에 따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글의 방향성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롭게 써야 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 경우는 최악의 경우로서, 지금까지 쓴 글들이 새로 쓸 글의 참고문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 표현이 부정확하다면 만족할 때까지 고쳐쓰기가 계속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스승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단지 감사하다는 표현은 너무 진부해 보입니다.
그 표현을 어떻게 나만의 표현으로 만들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지구에 피어난 무수한 장미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 사이에 차이를 발견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나와 스승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그 관계가 다른 인연과 어떻게 다른 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 과정에 대한 노력 없이 페이지를 넘겨 고쳐쓰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난감해집니다. 오탈자의 문제를 너머서 문장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그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요리사가 맛있다는 확신이 없는 요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개인의 입맛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요리사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 이하라면 그것은 취향과는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어떤 글이 모든 이의 마음에 들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만족스럽게 담지 못했다면 고쳐쓰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