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서 최소한의 기본인 '자기 글'조차 못 쓰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조금은 욕심을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맑게 닦을 필요가 있습니다. 표절은 일종의 유혹입니다. 쉽게 타인의 글을 훔쳐 무언가 결과를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나쁜 일은 세상에 흔하며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듯 합니다. 만약 글이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여행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라면, 좀 더 다른 시각에서 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계에 표절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쁘다고 쉽게 단정지어버리기에는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인정받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습작 시기를 떠올리면 글을 기계적으로 써 내려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써내야 하기 때문에 늘 신선한 내용으로 쓰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글쓰기에서도 시간은 관리 대상입니다. 글을 쓴 후 그 내용이 평가받기 전에 일단 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적인 글쓰기의 자세는 항상 고밀도로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글쓰는 행위 자체가 유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과까지 좋게 평가받고자 한다면 여러 겹의 스트레스가 밀려듭니다. 빈 원고지 또는 컴퓨터의 화면은 글을 쓰라는 무언의 압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름 있는 작가가 표절을 했다면 아마도 이런 결과를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신춘문예 등에 자신의 글이 아닌 작품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결과에 대한 유혹 때문이리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나친 결과주의는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표절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해서 그 방식을 옹호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의 정당한 평가와 기회를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지향해야 할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잘 쓴 글'이라는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작품을 쓰고 읽는 사람이 서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조금 쉬면 됩니다. 친구와 제가 선생님을 졸라 떡볶이를 먹었던 것처럼. 글쓰는 과정이 여행이라면, 우선 설렐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서 어떤 추억을 만들지 계획을 할 것입니다. 대학교에서 레보트를 쓰든 작가로서 소설을 쓰든 기행문을 쓰든 글을 마주하는 과정이 설렌다면 좋을 듯 합니다. 수필을 예로 들겠습니다. 인간은 매일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 감정들을 친구와의 수다로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글로 표현하고 다듬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다양한 학업에 관련된 스트레스를 글을 쓰며 해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색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고민에서 대해 스스로 답을 찾게 해줍니다. 생각을 하고 글을 씁니다. 그 과정만으로도 마음은 차분해집니다. 게다가 그 사고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타인의 글을 가져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올 틈은 없을 것입니다.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글들도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아름답습니다.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여행으로 여긴다면 힘들더라도 기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떠난 여행은 때로 고단하지만 새로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이 순간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여행을 하고 있다면, 나의 오감을 글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생각이 흘러갑니다. 그 생각에 경험이 더해집니다. 그를 나타내기 위해 적합한 표현을 찾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결과물을 다듬습니다. 좁은 관점에서는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독자가 읽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완성됩니다. 독자는 글과 호흡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천천히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도덕성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글쓰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