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글쓰기 노트 4
그럼에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사람이 글을 읽는 과정은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책을 읽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재해석합니다. 흔히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의 시기마다 같은 작품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독자의 경험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으로 그의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독자가 읽던 책을 덮고 글을 쓸 때에는 그 모든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맞는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 즉, 주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쓰는 일기일 수도 있고, 이메일로 쓰는 서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창작을 한다면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실적인 보고서의 경우, 여러 참조 문헌이 있을 수 있고 그 위에 연구자의 발전이 있을 수 있기에 인용은 필연적일 수 있습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성실한 표기가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창작물의 경우, 그런 허용의 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절은 남의 것을 가져와 내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돋보이는 무언가를 쓰는 것만큼 혹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글을 쓰는 것임을 어느 순간 간과할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은 늘 우리를 과정보다 결과에 목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이미 인정받은 글을 쉽게 가져오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를 속일지언정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의 글을 가져오는 이가 있을 듯 합니다. 사이버 세상은 지식을 공유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타협하겠다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매우 편리하게 이러한 과정을 돕는 듯이 보입니다. 마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도와 과정의 노력은 서로 비례하는 듯이 보이지 않습니다. 노력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난친 결과주의와 경쟁은 사람들을 도덕성의 추락이라는 벼랑 끝으로 밀어 넣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인간은 AI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오히려 방대한 데이터의 측면에서 인간은 AI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창의성과 도덕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추락한 채 문명의 이기만이 발전한다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비뚤어진 글씨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때처럼 진실할 수 있다면, 그 글은 문장의 세련됨이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혹 비평가의 눈에는 크게 대단한 글이 아닌데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글이 있습니다. 단순히 대중성을 갖춘 글인 경우도 있지만, 아이처럼 순수하게 진실성을 갖고 자신이 느낀 바를 쓴 글이기도 합니다. 경험이나 생각을 그대로 담고 그 내용이 독자의 마음에 닿으면 감동이 됩니다. 굳이 어려운 글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처음부터 표현의 미려함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멋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