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글쓰기 노트 #2

나만의 이야기를 쓰자

by 이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수필가 지연희 선생님께 글을 배웠습니다. 우연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친척 분이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멋있는 분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문장이 단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매주 선생님 댁에서 200자 원고지를 십여장씩 채워야 했습니다. 글의 주제는 선생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모두 글쓰기만을 위한 시간은 아니었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가끔 그렇게 정해진 틀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싫다고 하면 선생님은 그 투정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면 친구와 떡볶이를 사러 가곤 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선생님이 작문법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나눠주시면 그 내용을 함께 읽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칸칸이 나눠진 200자 원고지가 아주 오랜 시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순간까지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연습하여 마로니에 백일장에서도 펜으로 글을 썼습니다. 심사위원이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필체까지 헤아려서 써야 한다고 지도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펜으로 원고지에 글을 쓰던 시기에는 정해진 시간 안에 주제에 맞는 글을 어떻게든 써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쓰기 전에 누군가의 글을 읽을 수는 있겠지만 '가져오기'는 어려웠습니다. 저는 지금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원고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 쓰던 때에 비해 쉽게 빠른 속도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물론 컴퓨터는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레포트를 쓰면서 느낀 것은 참 쉽게 누군가의 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필기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창작'의 측면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맞춤법이 틀리고 수려한 문장을 쓸 수 없을 지라도 '자기만의 글쓰기'가 중요합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를 간과한다면 '기본'을 상실한 글쓰기가 됩니다. 'Ctrl+C'와 'Ctrl+V'를 잊은 채 글을 써내려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잘 쓰기 위해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첫 회차에 다루어졌습니다. 그것을 AI가 축적하는 데이터에 비유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AI는 데이터를 조합합니다. 때문에 그것을 창작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글을 읽는 과정은 단순한 데이터의 축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책을 읽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재해석합니다. 흔히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생의 시기마다 같은 작품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독자의 경험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으로 그의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독자가 읽던 책을 덮고 글을 쓸 때에는 그 모든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맞는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 즉, 주제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쓰는 일기일 수도 있고, 이메일로 쓰는 서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창작을 한다면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사실적인 보고서의 경우, 여러 참조 문헌이 있을 수 있고 그 위에 연구자의 발전이 있을 수 있기에 인용은 필연적일 수 있습니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성실한 표기가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창작물의 경우, 그런 허용의 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절은 남의 것을 가져와 내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돋보이는 무언가를 쓰는 것만큼 혹은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만의 글을 쓰는 것임을 어느 순간 간과할 수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은 늘 우리를 과정보다 결과에 목마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이미 인정받은 글을 쉽게 가져오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순간입니다. 누군가를 속일지언정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에서는 누군가의 글을 가져오는 이가 있을 듯 합니다. 사이버 세상은 지식을 공유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입니다. 그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타협하겠다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매우 편리하게 이러한 과정을 돕는 듯이 보입니다. 마치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도와 과정의 노력은 서로 비례하는 듯이 보이지 않습니다. 노력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난친 결과주의와 경쟁은 사람들을 도덕성의 추락이라는 벼랑 끝으로 밀어 넣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인간은 AI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오히려 방대한 데이터의 측면에서 인간은 AI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창의성과 도덕성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추락한 채 문명의 이기만이 발전한다면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비뚤어진 글씨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때처럼 진실할 수 있다면, 그 글은 문장의 세련됨이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혹 비평가의 눈에는 크게 대단한 글이 아닌데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글이 있습니다. 단순히 대중성을 갖춘 글인 경우도 있지만, 아이처럼 순수하게 진실성을 갖고 자신이 느낀 바를 쓴 글이기도 합니다. 경험이나 생각을 그대로 담고 그 내용이 독자의 마음에 닿으면 감동이 됩니다. 굳이 어려운 글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처음부터 표현의 미려함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멋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이 되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글로서 최소한의 기본인 '자기 글'조차 못 쓰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욕심을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맑게 닦을 필요가 있습니다.


표절은 일종의 유혹입니다. 쉽게 타인의 글을 훔쳐 무언가 결과를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나쁜 일은 세상에 흔하며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듯 합니다. 만약 글이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닌 여행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경우라면, 좀 더 다른 시각에서 글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계에 표절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쁘다고 쉽게 단정지어버리기에는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인정받기까지 어려운 과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의 습작 시기를 떠올리면 글을 기계적으로 써 내려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써내야 하기 때문에 늘 신선한 내용으로 쓰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글쓰기에서도 시간은 관리 대상입니다. 글을 쓴 후 그 내용이 평가받기 전에 일단 써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업적인 글쓰기의 자세는 항상 고밀도로 작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글쓰는 행위 자체가 유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과까지 좋게 평가받고자 한다면 여러 겹의 스트레스가 밀려듭니다. 빈 원고지 또는 컴퓨터의 화면은 글을 쓰라는 무언의 압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름 있는 작가가 표절을 했다면 아마도 이런 결과를 의식했기 때문이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신춘문예 등에 자신의 글이 아닌 작품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결과에 대한 유혹 때문이리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나친 결과주의는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표절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해서 그 방식을 옹호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의 정당한 평가와 기회를 앗아갔기 때문입니다. 지향해야 할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잘 쓴 글'이라는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으로써 작품을 쓰고 읽는 사람이 서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조금 쉬면 됩니다. 친구와 제가 선생님을 졸라 떡볶이를 먹었던 것처럼.


글쓰는 과정이 여행이라면, 우선 설렐 것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서 어떤 추억을 만들지 계획을 할 것입니다. 대학교에서 레보트를 쓰든 작가로서 소설을 쓰든 기행문을 쓰든 글을 마주하는 과정이 설렌다면 좋을 듯 합니다. 수필을 예로 들겠습니다. 인간은 매일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 감정들을 친구와의 수다로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글로 표현하고 다듬어서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다양한 학업에 관련된 스트레스를 글을 쓰며 해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색은 자신이 갖고 있는 마음의 고민에서 대해 스스로 답을 찾게 해줍니다. 생각을 하고 글을 씁니다. 그 과정만으로도 마음은 차분해집니다. 게다가 그 사고 결과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타인의 글을 가져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올 틈은 없을 것입니다.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글들도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아름답습니다.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여행으로 여긴다면 힘들더라도 기쁠 수 있을 것입니다. 집을 떠난 여행은 때로 고단하지만 새로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이 순간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여행을 하고 있다면, 나의 오감을 글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생각이 흘러갑니다. 그 생각에 경험이 더해집니다. 그를 나타내기 위해 적합한 표현을 찾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결과물을 다듬습니다. 좁은 관점에서는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독자가 읽는 과정을 통해 작품은 완성됩니다. 독자는 글과 호흡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천천히 온전히 즐길 수 있다면 도덕성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글쓰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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