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글쓰기 노트 13

장르별 글쓰기-문학, 희곡

by 이란


희곡을 전문적으로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제가 희곡에 대해 언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듯 합니다. 저는 주로 수필로 습작하여 고등학교 때 마로니에 백일장에서 수상하고 문예특기자로 동덕여대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고 현대문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졸업 논문은 채만식의 작품세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희곡을 접한 적은 있으나 제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희곡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논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한편 보통의 사람이 희곡을 쓰는 방법을 알아서 무엇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희곡은 소설처럼 글 자체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모두 알고 있듯 연극을 위한 것입니다. 보다 현대적인 접근으로 연극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영화나 드라마로 그 폭을 넓혀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글로서의 희곡에 대해 제게 묻는다면 희곡은 연극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어떤 권위있는 이론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대학 때 본 한 편의 연극에서 받은 내면적 충격이 가져온 영향입니다. 저는 그 연극을 보고 스크립트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희곡은 대사를 바탕으로 쓰여집니다. 그 대사에 녹아든 철학적 사상이 매우 궁금했고 그래서 활자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본 연극은 사무엘 바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지금 이 작품은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책으로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시나리오란 영화를 위한 수단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영상화하기 위한 과정의 선상에 놓여있고 대개 활자로서 무언가를 전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대사 중에 감동적이고 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도 그러합니다.


희곡은 다릅니다. 희곡을 책으로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연극을 보았던 분들이라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연극은 무대라는 공간 안에서 장면을 만듭니다. 영상만큼 동적이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연극의 무대에서 대사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시처럼 묵직하고 함축적입니다.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을 확대해서 깊숙이 들여다 보는 만큼의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희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대신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는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사실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한 듯 난해합니다.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허무에 가깝습니다. 그러한 내용 전개에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 극의 절정을 이루는 내용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진리는 닿을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 연극을 보는 내내 고도가 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함축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이든 우리가 기다리고 싶은 것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남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두 남자는 고도를 찾으러 가지 않습니다. 다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 기다림 속에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고 괴상하기까지 합니다. 저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듣지만 한 편으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이 두 남자의 기다림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화들이 이 희곡의 중심입니다. 주인공을 포함한 인물들 중 누구도 영웅이나 성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부족한 인간들이고 그래서 고도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내일 고도가 오지 않으면 같이 죽자는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헤매이는 인간 군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정답은 고도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란의 글쓰기 노트의 초입에 글쓰는 법을 배우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쓰는 것만큼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에서는 책을 추천드렸습니다. 만약 희곡에 대해 관심 있는 분이라면 사무엘 바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책으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연극은 소설에 비해 인물, 장면, 대사가 보다 두드러집니다. 이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계신 분들을 앞에 두고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떠한 방향성을 알려드리고자 한 권의 책을 권해드립니다. 희곡은 연극을 위한 글이고 이러한 희곡이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신춘문예의 한 장르로서 희곡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자극적인 영상 작품에 익숙해진 분이라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작품을 권해드리는 것은 삶에도 가끔 사색을 위한 쉼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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