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글쓰기 노트 14

장르별 글쓰기-문학, 소설

by 이란


소설은 진실을 이야기 하는 허구입니다. 진실과 허구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허구는 거짓이고 진실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설이 지닌 형식과 주제의식을 분리하지 못해서 생긴 혼돈입니다. 소설은 분명 허구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의식은 진실을 추구합니다. 만약 소설이 단지 가짜라면 그 내용이나 주제의식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생겨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두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소설이 소설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임을 이미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내용에 동화되어 깨달음을 얻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1930년대의 계몽소설 <상록수>는 어떠한 측면에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사상에 눈뜨게 하고자 하는 소설가의 의도가 분명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문학사조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왔습니다. 물론 모든 소설가가 이러한 흐름을 의식하여 소설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의 문학적 관점을 드러내거나 독자가 읽고자 하는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고심하는 듯 합니다. 문학사조는 숲이고 작품은 나무입니다. 전체적 조망 하에 나무가 자라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어떠한 소설을 써야 할지 고민할 수는 있겠지만 무엇을 써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소설가는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완성하며 독자는 이를 선택하여 읽습니다. 그 독서의 호흡에는 독자의 가치관과 경험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렇기에 어떤 작품이 최고라고 해서 내가 그 작품을 반드시 좋아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그렇기에 소설가로서 작품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정답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글의 구조에서 서론, 본론, 결론을 1:3:1로 작성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필요에 따라 깨어질 수 있습니다. 보고서와는 다른 소설과 같은 예술장르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카라멜 마키아토 2잔. F가 주문한 메뉴였다. A는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F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그리고 오늘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F가 먼저 말을 꺼낸다. 여자들은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좋으면 그냥 만나면 되지 왜 재고 따져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 똑똑한 건가요? A는 잠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답했다. F가 가진 감정에 대해 가볍게 대했다고 느낀다면 미안하다고. 하지만 처음 말했던 그대로 남자로서 만날 생각이 없다고. 그러니 오늘로서 끝내자고. F는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셨다. 깊고 부드럽고 달콤했다. F는 A와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A는 마음에 문을 열지 않았다. 나이가 문제인가요? F가 말했다. 전부 문제예요. A가 말했다. 그렇게 틀에 맞게 살면 행복해요? F가 물었다. 행복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사는 거예요. A가 답했다. 나와는 불안하다는 뜻인가요? F가 말했다. A는 대답 대신에 카라멜 마키아토를 마셨다. F가 제멋대로 주문했을 때, 아메리카노가 좀 더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흐름에 따라 쓴 커피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자신이 F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수로서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사랑에 관한 6가지 단상>, 1+1



먼저, 이 소설에서 제목은 한글이 아닌 수학 기호인 "1+1"입니다. 또한, 화자는 이름이 특정되지 않은 채 A와 F로 표기됩니다. 마치 신문기사와 같습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서 작품이 설명되고, 대화와 인물의 독백이 뒤섞여있지만 큰따옴표("")나 작은 따옴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법을 일부로 적용하지 않았고 이러한 형식적 파괴에는 소설가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와 상관 없이 독자는 자신이 느끼고 싶은 것을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익숙했던 글의 표현이 깨어져서 낯설기도 하고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1+1=2'입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답을 도출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 정답은 '1'이 아닐까 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 속에서 다른 시간을 거친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한다면 그 과정에는 통증이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그 통증은 네가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네가 될 수 없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하고 난 그 후에도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서로 몰랐기 때문에 그 환상이 사랑을 지탱했던 것은 아닐까요? 소설에 대한 제 프리즘은 어린 시절부터 무한히 바뀌어왔습니다. 그래서 소설 쓰기에 대해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단지 관심 있는 글을 읽고 자유롭게 써보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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