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글쓰기-자기서사
자기서사는 무엇일까요? '이란의 글쓰기 노트'를 준비하기 전에 국립중앙도서관에 갔습니다. 자료 조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글쓰기나 습작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펼쳐 놓고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중학교 때부터 수필가이자 시인이신 지연희 선생님께 작문에 관해 매주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직접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찾은 것입니다. 내용들은 익숙했지만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지 목차를 살펴보는 과정은 유의미했습니다. 그 과정에 '자기서사'라는 주제를 발견했습니다. 단어를 분해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좀 더 쉬워집니다. 자기서사란 '자기 자신'에 관한 '서사'입니다. 다시 서사란 무엇일까요? 이에 관해 국어 사전과 백과사전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서사라고 합니다. 주로 사건 중심으로 다루어질 수 있겠습니다.
자기 서사는 다음 시간에 다룰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와도 연결됩니다. 이력서와 관련된 자기 소개서는 커리어의 측면을 부각해서 주로 작성됩니다. 이와 비교하면 자기 서사의 윤곽이 좀 더 분명히 드러날 듯 합니다. 자기 서사에는 정체성이 담겨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글이 자기서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뜻 자기 소개서와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글의 목적을 헤아린다면 차이는 분명해집니다.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는 취업을 위한 것이고 자기서사는 자아성찰에 가깝습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첫 시간을 맞이한다면, 하얀 백지 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글을 쓰도록 할 것입니다. 자아 인식은 문학과 철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씀 드린 내용을 좀 더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자기서사로 부를 수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에 역사적 배경을 더해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 문제는 논외로 하고 자기서사의 관점에서 이 시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시의 우물은 시인이 자아 성찰을 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에 대한 애증에 휩싸입니다. 미워졌다가 가여워지고 다시 미워졌다가 그리워집니다. 시인은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추억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에 닿아있는 과거 속 자신에 대한 인식은 복합적입니다. 나르시스처럼 자아도취에 빠지지도 않고 이상의 '날개'의 주인공처럼 날개 없는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추락을 통한 자살을 택하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의 자기 인식이 윤동주와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완전한 자기애도 자기 부정도 어렵습니다.
얼마만큼의 삶을 살아왔든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기를 쓸 수도 있고, 수필로 완성할 수도 있으며, 소설이나 다른 장르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이 작가의 분신이라면 어렵지 않은 방식입니다. 글쓰는 방식을 익히는 과정으로 직접적으로 자기서사를 완성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자기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글, 즉, 자화상을 쓰고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은 플로피디스크에 담겨져 상장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우물이 아닌 거울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자아성찰을 하였습니다. 내가 잘 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학창 시절은 그 목적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자신과 타인이 함께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반성의 도구로 거울이 존재했습니다. 아직 나는,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지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성당을 다니며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자원봉사도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힘들었지만 여러 사람들과 봉사했던 시간이 의미있게 남아 있습니다. 평일에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 봉사를 하며 멀리 있는 신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신이 완전체라면 불완전한 인간은 그 완전함에 닿으려 노력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인간을 아껴 독생자 예수를 보내고 그 예수는 인간의 죄를 안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합니다. 예수의 길이 인간이 신에 닿기 위한 길입니다. 교리는 이상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서사에 대해 가장 잘 쓰여진 글을 읽기 원하신다면, <성경>을 권하고 싶습니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