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인지하면 포기할까 봐 두려웠다.

사회생활은 처음이라

by 이랑

얼마 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무급 실습을 했던 회사와 다시 인연이 닿았다. 위치는 송파구 가락동.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먼 출근길에도 신이 난다. 드라마처럼 회사에 내 이름이 걸린 자리가 있는 것이 신기하다.


입사 첫날 선배가 하소연을 했다. 같이 일하던 동기가 행사를 한 달 남기고 퇴사를 해 내가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함께 잘해보자고 이야길 해주는데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무언가 역할이 주어진 다는 것이 기뻤다. 1년 전 무급 실습을 했을 당시엔 특별히 역할이랄 게 없어 아쉬웠기에.


며칠 지나지 않아 역할을 갖는다는 것의 무서움을 마주했다. 코트라가 주최인 행사를 준비 중인데 선배와 둘이 파견을 나가라는 지시였다. 행사에 대해 간신히 파악해 하나하나 다 배우는 중인데 파견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파견 첫날 전문위원으로부터 바이어를 위한 가이드 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바이어들이 행사에 오기 전에 이 곳에 대해 궁금해할 정보들을 넣는 것인데. 날씨, 화폐, 언어, 문화 등 일반적인 내용과 수송 차량 탑승 위치와 같은 실질적인 정보들이 담긴 작은 안내 책자를 만드는 것이다.


한글, 워드, ppt... 어떤 것을 활용해서 만들어야 할지부터 분량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수십 개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나는 질문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3일 차 신입인 지 모르기에. 나는 여기에 한 회사의 직원으로 파견을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심지어 바로 옆자리에 있는 선배에게도 물어볼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은 적막했다.


가이드 북을 만들며 전문위원에게 많이 혼났고 많이 배웠다. 그는 우리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하다가 전문 위원으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그만둔 선배 대신 파견 나온 것을 금방 알아차렸고 그런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답답해했다. 나는 더 많이 답답했고 늘 죄송했다.


점심시간은 불편했다.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편하게 대해주셨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저녁 6시가 되면 선배와 나는 회사로 복귀를 해 다시 업무를 시작한다. 며칠 만에 어떠한 교육도 없이 파견을 보낸 회사이지만 그래도 돌아오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묘하다.


선배는 두 번, 세 번 체크하는 꼼꼼한 성격인데 그래서 나는 종종 그것이 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끝이 없는 업무를 불안해서 두 번, 세 번 체크를 할 시간이 없다고 느끼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선배로서는 내가 한 일을 다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아빠가 외근을 나가서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 지하철에는 역시나 사람이 많았고 엄마와 나는 좌석 앞 손잡이를 잡고 섰다. 멍하니 서 가다 엄마 앞에서 한 자리가 났다. 엄마는 나에게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했고 괜찮다는 나에게 엄마는 재차 앉으라고 권해 억지로 엄마를 앉혔다.


억지로 앉은 엄마는 애꿎은 구두 핑계를 대며 엄마는 편한 신발이라고 했다. "괜찮다니깐"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을 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팡 하고 터졌다. 나도 놀라고 엄마는 더 놀랐다. 자리에 앉아 놀란 눈으로 엄마가 날 바라봤고 나는 빠르게 눈물을 훔치며 꾹 눌러 울음을 삼켰다.


괜찮지 않다. 매일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해야 하는 일을 다 마치지 못해 불안으로 가득 찬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전혀 괜찮지 않다. 많이 지치는데 눈 앞의 현실이 지쳐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힘들다고 인지하면 포기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저 어떻게든 이 행사를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몇 정거장 지나 엄마가 먼저 내리고 그 자리에 앉았다.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우리 딸 많이 힘들지? 힘내!"




2013년 4월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창피함도 느끼지 못하고.

그때의 나로 돌아가 보았다.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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