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 선배에게서 나를 보았다.
무료한 어느 날. 나는 그만두어야 했다.
2014년 10월. 5일간 행사를 위해 1년의 시간을 준비했다. 1,000명 넘는 대규모 행사인 데다 제주에서 열리는 행사여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 해 초 PM인 선배가 임신을 했다.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온전히 축하하지 못했다.
행사 한 달을 앞두고 제주도로 현장 사무국을 꾸렸는데 선배는 내려가지 못했다. 만삭의 몸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심지어 만삭이 될 때까지 계속 야근에 시달려 매일 퉁퉁 부은 발로 다녀야 했다.
매일 7시 반 카니발을 타고 다 함께 출근했다. 그리고 새벽 3시, 4시가 돼서야 퇴근했다. 어느 날은 출근하려고 하는데 단체 카톡이 울리지 않아야 할 시간에 계속 울려댔다. 서울에서 온 카톡이었다. VIP 중 한 명이 비자가 나오지 않아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며 그 원인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비자 관련 안내를 했는데 발급 기간이 안내한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그 VIP 참가자가 오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당시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는 나보다 더 많은 사회생활을 한 사람이었는데, 그럴 일은 없고, 그렇게 되도록 주최 측에서 두지 않을 것이니 더 이상 나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고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당시엔 그 대답이 너무 냉정하다고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다. 그 이후에 해당 VIP 참가자는 주최 측의 도움으로 잘 입국했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는 게 맞기 때문에 그렇게 울고 있을 시간에 내 할 일이나 더 챙기는 게 맞는 방법이었다는 것. 겪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알겠다.
5일간의 긴 행사가 끝이 났다. 주최 측에서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훈훈한 대화가 오갔다. 어딘가 헛헛한 마음에 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가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누구보다 궁금해했을 선배에게 행사 소식을 전했다. 어두운 주차장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큰 통유리 창을 찍어 보냈다. 선배는 아쉬운 티 하나 내지 않고 담담히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1년을 공들인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선배의 마음이 어땠을까? 일을 하면서 항상 생각했다. 현재는 혼자이기에 이 일을 하지만 가족이 생기면 정말 어렵겠다. 의지만으로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 현실을 눈으로 보고 말았다. 만삭 선배에게서 나를 보았다. 머리가 멍해지도록 잠을 못 자고 어딘가 억울하게 일이 진행돼도 그만둘 결심은 못했다. 즐겁고 보람차고 행복한 순간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날의 기분은 조금 달랐다.
출산 휴가를 간 선배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회사였다. 선배가 현장에 내려가지 못하게 되자 나를 각별히 챙기기 시작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저렇게 하겠지? 내가 여기서 7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겠지? 너무 좋아하는 일이지만 그 현실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못했다. 연말 행사로 지방을 여러 곳 돌고 다음 해 행사 제안서가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정리도 파일 정리도 더 이상 할 게 없어 무료한 어느 날. 지금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불현듯 일어났다. 나는 그만두어야 했다.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