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업난이 무엇인지 몰랐다

험난한 이직 과정

by 이랑

2년 만에 대리를 달았고, 일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일을 해보니 세상에 할 일이 너무도 많았고 어디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자신만만했다. 첫 직장은 졸업 전 인턴십을 하다 전환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취업난이 무엇인지 몰랐다.


수차례 떨어짐을 반복하며 자존감이 한참 낮아지던 때에 취업 상담 선생님에게 공고를 하나 추천받았다. 청년들을 위한 일을 하는 신생 재단이었다. 1달 전에 생긴 재단에서 홍보 담당 경력직을 뽑는데 어떻게 끼워 맞춰 원서를 썼다.


공고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 운 좋게 서류에 합격했고 면접을 봤다. 승무원인 친구에게 올림머리 전수까지 받았다. 일하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 질문은 날카로웠다. 끼워 맞춰 지원을 한 것이 온전히 들통났다. 그래서 그냥 나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잔뜩 하고 나왔다.


떨어졌다는 생각에 언니와 함께 낮부터 엽떡에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면접 본 회사에서 전화가 와 정신을 붙들고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취하지 않았다. 멘토링 기획 업무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하고 싶었지만 공고가 없어 지원하지 못했던. 그렇게 이직에 성공했다.


첫 직장을 느낌적으로 그만두는 바람에 2년을 꽉 채우지 못했다. 경력직 채용 기준이 2년이었는데 1년 11개월의 경력이었다. 1개월의 경력이 부족한 것을 내부 회의로 해결했지만 급여는 동기들보다 적다고 했다. 26살이었다. 20대 직원은 나 하나뿐이라고 큰 도움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감사했다.


매일 아침 이순신 장군을 보며 '오늘도 파이팅할게요'라고 속으로 말하며 출근했다. 3개월의 수습을 마치고 정직원이 됐다. 먼저 입사한 선임과 함께 일하다 몇 개월 지나 혼자 멘토링 파트를 맡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찾고 배우고 공부했다.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루하루 감사할 일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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