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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Oct 30. 2019

그 시절 나를 꺼내볼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글쓰기 모임 후기 - 고유글방

작년 12월. 서른을 맞이해 금요일 밤 마음을 쓰기로 했다. 연말에 금요일 밤 글쓰기 모임. 처음부터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어야 했다. 6회 수업에 2회밖에 나가지 못했고 글쓰기 모임은 그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자주 쓰다가 종종 쓰다가 했다. 무턱대고 글을 쓰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졌고 꾸준히 쓸 힘을 기르고 싶어 글쓰기 모임을 찾았다. 어느 책 쓰기 특강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남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조심스러웠다. 나와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작가를 만나 고통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 즈음에 추억 속 고수리 작가(https://brunch.co.kr/@daljasee)님의 글쓰기 모임 소식을 접했고 여기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10월 8일. '고유 글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첫 만남인 만큼 자기소개를 하고 '이름'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나누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울컥하면서 바보같이 울먹이다 마쳤다. 첫날은 '나 왜 그랬지'라는 생각을 계속했던 것 그리고 나의 왼편에서 연필로 5분 만에 쓴 '점란'님의 글을 듣고 머리를 댕 하고 맞았던 기억뿐이다.


10월 15일. 글쓰기 주제는 '기억'. 사소하고도 강력한 기억을 작성하고 그중 하나로 글을 쓰는 것. 왜일까 글만 쓰면 감정의 소용돌이가 눈으로 모여 쏟아진다. 미리 써오고 퇴고만 해도 좋다고 하셨는데 왠지 도전해보고 싶었다. 현장에서 시간에 맞춰 고통받으며 쓰는 글은 어떨까? 그렇게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며 글방에 갔다. 어떻게 쓰긴 썼다. 함께 하는 분들의 글을 듣는데 내가 그 기억 속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온전히 그 기억을 끄집어낸 글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좋은 글이라고 뽐내고 있었다. 엉망인 글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다. 비슷한 또래인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는 작가님. 소녀시대를 평범한 우리와 연결해서 쓴 것이 독특했다는 '정아'님. 그 피드백을 집에 가는 내내 상기했다.


10월 22일. 세 번째 글쓰기 주제는 '마음'.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는데. 완벽히 다 들어가기 힘들어 살짝 덮어둔 마음이 자꾸 튀어나와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간신히 조금 들여다보고 다짐성 멘트로 포장해 글을 마무리지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의 글을 들으며 대신 나의 마음을 확인했다. 내가 쓰지 못한 것을 대신 써주셨다고 밝히고 글을 읽었다. 작가님은 지난겨울에 봤던 나와 지금의 나의 이미지가 다르다며 지금의 내가 더 보기 좋다고 했다. 충분히 흔들려도 좋다고 얼마든지 더 흔들리며 고민하라고 말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10월 29일. 마지막 글쓰기 모임의 주제는 '사랑'. 이제 길 좀 안다고 여유를 부리다 지각을 했다. 허겁지겁 뛰어 들어갔는데 '정아'님이 초콜릿을 주셨다. 마지막 날이라 준비하셨다는 말에 정신없이 오느라 잊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내 차례가 되었다. 울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내 기준 나름 담담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 마음으로는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는 구절에서 터져 결국 눈물로 마무리를 지었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사랑을 표현한 글이라며 초반부 내용이 좋았다! 는 작가님의 피드백 덕분에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글과 사람이 똑 닮아서 아쉬운 마음이 더했다. 두 장의 티슈와 함께 '고유 글방'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고유 글방'에 가는 날은 항상 맑았다. 가는 길엔 항상 두근거리고 설렜다. 함께 글을 나누고 돌아오는 길엔 항상 깨기 싫은 꿈에서 깨버린 듯 아쉬웠다.

 

풍성 분식 막내딸이던 나. 초등학교 4학년 거실에서 소리치던 나. 외할아버지가 까주던 호두를 받아먹던 나.

그 공간에서 한 없이 솔직했던 그들의 글을 통해 그 시절 나를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습니다.


2019년 10월. 마음 쓰는 낮을 경험 했다.  


고유 글방 가는 길 l 정아님과 석영님의 카드*.*

*고유글방 2기는 11월 19일에 개강한다고 합니다.(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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