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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Aug 13. 2019

현실성 떨어지는 삶

제주도 즉흥여행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오늘은 왠지 떠나고 싶었다. 제주도 티켓을 알아봤는데 나쁘지 않은 가격에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 차려보니 제주도 숙소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갑자기 떠나고 싶다는 여자 친구에게 진짜로 티켓을 구매해준 남자 친구 덕분에 나는 일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 비행기로 도착해 하루 묵을 수 있는 숙소 예약도 마쳤다. 정신없고 조금은 무섭기도 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언니와 통화를 했다. 그냥 숙소에서 티비보고 누워있다고 말하며 그냥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싶다고 말하니 내일 아침 되면 분명 좋을 거란다.(불안한 남자 친구는 그냥 내일 다시 올라오라고 했다.) 바다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카페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저녁 먹고 들어와서 영화 보면서 맥주 한잔하고 하면 좋을 거란다. 맞다. 그런 어렴풋한 생각에서 떠나오고 싶었다. 바다 보면서 책도 보고 그러다 글로 쓰고픈 것이 떠오르면 글도 쓰고 그렇게 보내고 싶어서 훌쩍 떠나온 것이 맞다. 날이 밝고 숙소 창 밖으로 파란 바다가 보였다. 어젯밤엔 그저 검은 바다였는데 너무 이뻐 신이 났다. 무섭지 않았다.

깨끗이 씻고 드라이도 하고 나와 숙소 사진도 한 장 찍고 아점으로 근처 수제버거 가게에서 수제버거도 하나 깔끔히 해치웠다. 갑작스레 여행을 오게 되어 힘든 점 한 가지는 제주도에 그 많은 렌트가가 모두 예약된 상태라는 것. 뚜벅뚜벅 뚜벅이 여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할까 하다가 마침 건너편에 금요일까지 머물 숙소로 향하는 버스정류장이 있어 소화도 시킬 겸 버스로 이동하기로 맘먹었다.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식사를 마치고 캐리어를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중간쯤에서 한번 버스를 갈아타고 숙소 근처 정류장에 내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 전 짐만 맡겨두고 카페가 있을 법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곽지해수욕장 근처인 숙소에서 조금 걷다 보니 저 멀리 해수욕장에서부터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잔뜩 있는 카페보단 조금 한적한 카페가 가고 싶은데..라는 생각으로 걷다 조용한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엔틱한 디자인의 카페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몽글몽글 아인슈페너 한 잔과 함께 책을 보다가 바다를 보다가 그러다 문득 감사함이 밀려온다.

떠나고 싶다는 말에 단번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신사임당을 품은 종이 하트와 추가 용돈, 그리고 편지를 쥐어주는 남자 친구.
말 한마디 없다가 저녁 퇴근 시간에 갑자기 제주도에 가려고 공항에 왔다는 딸이 걱정되어도 그냥 가만히 이해해주는 엄마, 아빠.
그리고 궁금할 법도 한데 한마디 물음도 없이 그저 재밌게 놀다 오라며 휴가 지원금을 쿨하게 쏴주는 언니까지.

내가 이렇게 조금은 현실감 떨어지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이렇게 든든히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되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잘해야겠다. 이곳 제주에서 바다 보며 현실성 있는 계획을 꾸려서 돌아가야겠다.

"영채 남매는 별 말 없어?"
"응 미안하지만 없었습니다~"
내 자식은 아니지만 이 품 안의 조카들! 매일 지지고 볶느라 꽤 피곤했는데.. 이 짜식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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