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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Jul 26. 2019

마음 쓰이는 저녁 한 끼

제육볶음, 물김치, 그리고 할머니

20대 초반 홀로 '내일로'  여행을 떠나려고 준비를 했고, 그 첫 번째 관문은 아빠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아빠는 혼자는 위험하다 반대했고,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계획에는 없던 일정이지만 불현듯 해남에 계신 친할머니가 떠올랐고 중간에 할머니 집도 들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빠를 설득했고, 나는 생전 처음 혼자서 할머니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하루 전 날 광주에서 야구경기 직관을 하고 늦은 밤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 저 지금 광주예요. 내일 집으로 갈게요." 할머니는 많이 당황하신 듯했으나 "어구 어구 아가 그러냐~"를 반복하시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느냐고 물으셨, 나는 최애 음식인 '제육볶음'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설날, 내 입에는 너무나 비린 굴 떡국을 끓이셨던 할머니이기에 다른 기대는 없었다.


다음 날 늦은 오후가 지나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조금 어색했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다 마당을 한 바퀴 돌며 나무를 걸어 몇 장, 장독대를 걸어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그리곤 동네에 딱 하나 있는 작은 슈퍼에 가서 아빠가 시킨 '검은콩 두유 사기'를 마치고 돌아오니 어스름히 해가 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저녁 상을 차리고 계셨다.


제육볶음, 물김치, 밑반찬 몇 가지와 고봉밥이 차려져 있었다.


할머니와 밥상에 마주 앉아 조용히 밥을 먹었다. 명절마다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그리 살갑게 굴지 않는 손녀이기에 아마 할머니도 나와의 밥상이 조금은 어색하셨을지도 모른다. 속으로 괜히 찾아와서는 번거롭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없이 밥을 먹었다. 머니가 만들어주신 제육볶음은 음.. 그냥 제육볶음이었다. 그러다 물김치를 한 입 먹었는데 물김치가 새콤하니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육볶음이 먹고 싶다고 하고선 물김치가 엄청 맛있다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으며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저녁을 먹고 나니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안방 벽에 붙은 할머니 환갑 사진, 엄마 아빠 결혼사진 등을 보다가 할머니 집에 있는 낡은 앨범을 함께 보았다. 그리곤 8시도 채 안돼서 잠자리에 누웠다. 아슬아슬하게 터지는 핸드폰 밝기를 최대한 어둡게 하고 핸드폰을 하는데 너무 고요하고 깜깜해서 무서웠다. 한참을 무서워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날 저녁 나는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낡은 앨범 속 여러 무리 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있는 중절모를 쓴 연예인 뺨치게 잘생긴 남자우리 할아버지라는 놀라운 사실과 할머니 눈에는 그 남자보다 우리 아빠가 잘생겨 보인다는 , 그리고 할머니는 어제도 이렇게 혼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내일도 이렇게 혼자서 긴 밤을 보내겠구나라는 '불편한 사실'이었다.

어떤 분이 할아버지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할머니는 종종 집으로 택배를 보내신다. 안에는 뭐 다양한 것들이 들어서 오는데 나는 택배가 와도 직접 열어본 적이 없기에 사실 무엇을 보내시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한 가지는 정확히 안다. 할머니가 그 날 내가 잘 먹었던  물김치를 보낸다는 것. 그리곤 엄마에게 이랑이가 좋아하는 물김치 보냈다고 말씀을 하신다는 것도. 실은 집에서 밥을 잘 먹지 않는 내가 그 물김치를 먹지 않아 실제로는 거의 아빠가 다 먹게 되는 물김치이지만.


2017년 설, 추석, 그리고 2018년 설. 세 번의 명절에 연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세 번 연속 그렇게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자 할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당시 나는 1년 제주살이를 떠난 언니 집에 와있었다. 마당에 앉아 언니와 모닝커피를 마시다 할머니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볼 수 있는 줄 알고 왔는데 언니한테 갔다고? 그래 잘했다~ 할머니 보고 싶으니까 시골에 또 놀러 와~ 등등" 꽤 긴 통화를 하는 모습에 언니가 의아해했다. 그렇다. 우리와 할머니의 사이가 그렇다. 홀어머니인 할머니가 엄마에게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 다양한 사건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머니 사촌동생들을 직접 기르며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셨기에 우리 사이는 그냥 그랬다.


데 그 날 이후 나는 갑자기 할머니의 애정을 받고 있다. 명절에 다 같이 모이면 '참 속 깊고 착하다고' 칭찬을 하신다. 그리고 아주 가끔 안부 전화도 하신다. 이에 솔직한 내 심정은 그냥 마음이 쓰인다. 불편하게 쓰인다. 내가 진심으로 할머니를 위해버리면 아직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엄마를 배신하는 것 같아 못하겠고, 또 보고 느낀 바가 있는데 냉정하게 외면하기엔 그렇게 차갑지는 못한 사람인가 보다.


나는 여행을 허락받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던 것인데.. 매일 혼자 먹던 밥상에 함께 마주 앉아 한 끼를 먹었던 그 날의 사건이 죄송스럽게도 할머니에게는 꽤 크게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할머니라는 단어를 이리 많이 써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어찌 되었건 그 제육볶음과 물김치 덕분에 나는 계속 이 불편한 '마음 쓰임'을 계속하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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