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by 상담사 이경애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2009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하라다 요시오


상담실에서 만는 분들께 질문릴 때가 있다. 금 얘기하는 제를 족도 알고 있는지. 은 분들이 자신의 문제를 모님이나 배우자에게 알리지 않다. 끙 앓으며 고민하고,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로워하고, 방법이 없 것 같아 죽음을 떠올리면서도.

가족에게 왜 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걱정 끼치고 싶지 않다.'

'무 걱정는 걸 보는 게 더 스트레스다.'

'이해지 못할 게 뻔하다.'

'얘기해 봤자 잔소리나 듣, 싸움만 커진다.'

'가족이랑 심각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 가벼운 얘기만 한다.'

'리 집은 래 대화가 없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족은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9년 작품 '걸어도 걸어도'는 평범한 가족의 하 여준다. 부엌에서는 모녀가 채소를 다듬고 고기를 조리며 식 장만에 분주하다. 단한 편의점 심부름도 안 하는 아버지 흉을 보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들 내외 이야기를 나눈다.

'고르고 고르다 중고를 골랐다'며,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새 며느리 뒷담을 한다.


시간 차남 료타와 아내 유카리, 아들 아츠시는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오랜만에 향집에 들르는 료타 마음이 편치 않는다. 최근 실직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아내에게 다짐을 받는다.


'부자간에 체면 차릴 없을 것 같은데.' (유카리)

'부자간이라서 그래. 실업 중이란 말 절대 못 해. 그 사람한텐.' (료타)


집에 도착한 료타네를 맞하는 아버지 데면하다. 들과 눈도 맞추지 않는다. 평생 의사로 일 온 아버지에게 '회화 복원사'라는 료타의 직업은 생소하. 밥벌이는 제대로 는지 미덥지 않다. 혼을 해도 하필 이 딸린 부라니 영 탐탁지 않다.


각자 속내는 있지만 가족은 큰 소리 안 내고 적당히 피하고 맞며 하룻밤을 보낸다. 어머니는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 고, 아버지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으면 눈치껏 농담으로 밀어낸다. 다행히 소란을 피워주는 아이들도 있다.



구시렁대며 번씩 이상한 소리를 하는 어머니, 가족 있어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친정에 들어와 살 궁리에 눈치를 살피는 누나, 여기저기 낡아가는 집안 풍경.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가뜩이나 음이 불편한 료타는 른 집을 떠나고 싶다. 하룻밤 자고 가자며 남편을 붙잡는 건 새 식구인 유카리다.


먹고 고 떠들지만, 사실 이 날은 가족에게 즐거운 날이 아니다. 집안의 장남 쥰페이의 기일이라는 게 나중에 드러난다. 좋아하던 옥수수튀김을 먹으며, 옛날 사진첩을 들춰보며 한 번씩 쥰페이 얘기가 나온다.

기억을 날카롭게 소환하는 람은 마다 기일면 찾아오는 청년이다. 면부지인 그 청년을 구하다 10년 전 다에서 쥰페이는 목숨을 잃었다.


아무 상관없는 남 아이 대신 내 아들이 죽어야 했는지 어머니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청년이 훌륭하게 란 것 같지 않 그것도 마땅하다. 멋지게 성장했다면 그 또한 억울을지 모르지만.

내 아들 목숨 대신 살아있는 청년의 존재. 엄마는 그 얼굴을 굳이 봐야겠다고 한다. '내년에도 꼭 와서 얼굴 보여줘야 , 내년에도 기다리겠.'라웃으며 말한다. 년도 괴로워 보이는데 이제 그만 오게 하자는 타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증오할 상대가 없어지면 괴로움은 더 거야.'

'1년에 한 번쯤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 정도는 해야지.'



내내 말이 없던 아버지도 청년이 돌아간 후 '저런 하찮은 놈 때문에 하필 내 아들이, 우리 애가 아니어도 되지 않았나'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일은, 너무 일찍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 움이 터져 나오는 날이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날이다.

1년에 하루로는 턱 없는 아픔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부모는 어떻게 견뎠을까.


평범한 주부로 용히 살아온 어머니는 남몰래 즐겨온 취미를 딸에게 들켜버린다. 가나 시 같은 취미도 있는데, 파칭코가 뭐냐고 타박하는 딸에게 엄마는 말한다. 파칭코 소리를 들리면 속이 좀 풀린다고.

틈만 나면 자식들을 붙잡고 엄마는 소연한다. 모르는 아이를 꼭 구해야 했을까, 그날 바다에 나간 걸 알았다면 얼른 집으로 렀을 텐데, 남편이 의사면 뭐 하나 아들이 위급할 때는 없었는데.

몇 번을 되려 물어보고, 후회하고, 원망해도 답이 없고, 탈출구도 없이 맺힌 마음은 파칭코 소리로 한 번씩 숨통을 트였나 보다.


술 한 잔 곁들여 저녁 식사를 며 부모님만의 추억의 노래가 는지 며느리가 묻는다. 그런 거 없다는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신이 나서 LP 한 장을 들고 온다. 1970년대에 유행했던 '푸른빛의 요코하마'라는 래를 함께 듣는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충격적인 건 노래에 얽힌 사연이다. 오래전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엄마는 다른 여자의 집 앞까지 아빠를 래 따라갔다. 추억의 노래는 그날 밤 내연녀의 집에서 러나오던 유행가였다. 밖에서 듣고 있던 엄마는 조용히 돌아섰고, 자 그 노래를 듣다 좋아하게 됐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무도 몰랐다. 당사자인 아버지차 수십 년 만에 처음 는 소리에 놀란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마주한 엄마의 모습이 료타는 낯설고 불편하다. 그런 엄마를 둔하는 건 아내 카리다.


'혼자 숨어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니, 싹하지 않아?' (료타)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 누구나 있어요.' (카리)



료타의 직업은 '회화 복원사'다. 누나의 말처럼 '그림 의사'다. 렸을 때 료타는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었다. 늦은 밤에도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에게 달려가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타의 꿈이 의사였다는 걸 가족들은 몰랐다. '그림 의사'가 된 료타가 복원하고 싶은 풍경에는 어떤 장면이 있었을까.


가족 유일하게 아버지의 진료실을 궁금해하는 유카리의 어린 아들 아츠시다. 뚝뚝하게 호통만 치던 할아버지도 웃으며 아이의 손을 만져보고 용돈을 쥐어준다. 낯설었던 가족이 아츠시의 마음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온다.

너무 어릴 때 친아빠가 죽어서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츠시는 이다음에 크면 아빠처럼 피아노 조율사가 되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할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겠다고 심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을 '걸어도 걸어도'를 찍으며 치유했다고 말한다. 영화감독인 아들을 걱정했던 어머니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작품으로 아들이 주목받는 걸 보지 못하고 쓰러졌다. 평소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에 아들이 출연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숨을 거뒀다.

일본에서 영화가 개봉했을 때의 홍보 문구처럼,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다.'


감독은 상실 이후에 남은 가족의 모습을 평범한 일상 속에 담담하게 그다. 료타의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처럼 족들은 걸어도 걸어도, 은 배처럼 흔들리고 어긋나며 살아가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잠잘 때 어떤 버릇이 있는지, 사소한 모습까지 봐온 사이기에 속속들이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 가족은 남보다 서로를 모른다. '속마음'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친한 친구는 고 있어도, 가족에겐 못하는 말이 있다. 상담실에서는 얘기할 수 있지만 가족에게는 감는 비밀이 있다.


감정이 서툰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 슬픔을 삼킨다. 말로 꺼내지 못한 이야기, 이해되지 않은 마음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얼굴을 바꿔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우울에 빠지고,

슬픔이 밀려오기 전에 먼저 외면해 버린다.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른 데 몰두한다. 중독도 그렇게 시작된다.

슬퍼하는 대신 화를 낸다. 슬퍼하기보다 화를 내는 게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슬픔과 관계없어 보이는 엉뚱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슬픔이 소화되지 않아 몸의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학 작품 속 상실과 애도를 다룬 '애도 예찬'이라는 책에서 왕은철 작가는 말한다.


'어쩌면 애도는 언어의 매개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애도는 말로 할 수 없던 슬픔을 말로 표현하면서, 즉 언어의 영역으로 끌어오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 애도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고, 애도의 끝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하지만...'


족이라도, 아무리 가까워도, 모든 걸 다 말지 않을 수 있다. 말을 해도 알 수 없는 마음,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묻지 않는 마음도 있다.

그래도 말하고 싶을 때, 이 사람에겐 말해도 되겠지 하며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건강한 가족은 아무 문제가 없는 가족이 아니라, 편하게 할 수 있는 가족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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