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너머의 나의 세계
"저는 손가락 변형이 있어요. 저도 가능할까요?"
휴대폰에 직접 만든 키링을 매달아 보고 싶어서,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초콜릿 쿠키를 구워주고 싶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해보고 싶어서,
건넨 나를 소개하는 프로필 첫마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첫 대답.
예상했지만, 익숙했지만. 그날 하루는 어쩐지 나 자신이 한없이 쓸모없는 사람 같아서.
온몸이 메말라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 아' 귓가에 울려 퍼지는 쉰 목소리가 커다란 나무문에 닿았다. 하얀 짧은 머리에 통통한 몸집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수북이 쌓아진 빵을 지나 넓은 테이블과 오븐이 놓인 작은 공간으로 이끌었다.
- "빵을 만들어 본 적은 없는데, 가능할까요?"
- "그럼요.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어요."
어디 걸리는 곳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이 두 마디가, 너무 좋았다. 이대로 대화가 끝나기를 바랐지만, 나는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렸다. 움켜쥐고 싶은 손짓을 간신히 억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제가 손가락 변형이 있어서 남들보다 느리고, 동작에도 한계가 많아요."
- "그럼 천천히 배우면 되죠."
그때 알았다.
대화를 나눌 때 가장 궁금했던 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지, 흔들리지 않는지였다는 걸.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단단히 머물러있는 검은 동공과 주저함이 스미지 않은 담백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 낯선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빵을 배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아직, 기회라는 게 남아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는 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쌀가루와 현미유, 죽염, 유기농 황설탕, 이스트로. 단순한 재료들로 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생크림 대신 코코넛크림을, 색소 대신에 쑥가루를 사용해 가며 천천히 내 손에서 새로운 세계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작은 공간을 구해, 중고로 작은 반죽기와 오븐, 발효기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일 년이란 시간 동안 매일 빵을 구웠고, 조금씩 빵다운 빵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페인트를 사다 사다리에 올라섰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누르며 하얗게 벽을 칠해갔다. 그렇게 무너졌던 나의 세계도 천천히 일어서갔다.
초록색 문이 열렸다. 분홍색 반팔 티셔츠 위에 걸친, 회색 앞치마를 가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