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

내 손 안에 있던 나의 세계

by 붕대토끼


손끝으로 나의 세계를 빚어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연필을 제대로 잡는 법도 몰랐지만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스케치북에 그려 보고, 바느질 기법 하나 아는 게 없었지만 흐트러지지 않은 곧은 직선만이 가득한 인형옷을 만들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나의 세계 바깥으로 나갔다.

손이 퉁퉁 부어 칫솔조차 들지 못하는 날들이 찾아왔다. 붉게 달아올랐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매일 아침 낯선 얼굴로 잠든 손을 바라보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 눈이 아니라, 내 손에 머물렀다. ‘보고 싶은 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는 표정 속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왜인지 또렷하게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릎 관절염으로 오래 서 있기 힘들고, 한쪽 성대가 마비돼 말하기조차 쉽지 않으며, 손가락 변형 탓에 손을 쓰는 일도 버겁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까.


스스로를 애틋히 여기는 일은 이쯤에서 그만둬야 했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안타까워해 줄 리도 없었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민의 동굴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염증을 줄이는 생활—에 집중했다. 요리는 서툴렀지만 매일 세끼를 챙겼다. 간하지 않은 김과 김치, 맨밥. ‘좋은 음식을 먹기’보다는 ‘나쁜 음식을 피하기’에 가까웠다. 매콤함이 그리운 날이면 생마늘을 썰어 먹었다. 혀끝이 알싸하게 얼얼한 단 1분, 어떤 걱정도 스며들지 않은 그 순간이 좋았다. 한 알, 두 알, 세 알. 입 안이 헐어버릴 때까지도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쳤다.
‘하루 종일 건강하게 먹을 방법만 고민한다면, 그 자체를 일이 되게 하면 어떨까?’

‘건강빵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볼까.'라는 헛된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 생각을 놓지 못했다. 전국의 건강빵 베이커리를 찾아다녔고, 택배 주문이 가능한 곳이면 주저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마침내 평소 먹던 빵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쫄깃하고 고소한 빵을 만났다.




땀으로 젖은 분홍색 티셔츠를 가다듬으며, 부산의 한 베이커리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어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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