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버스

눈물을 허락해 준

by 붕대토끼

걸음마다 스며드는 고통 속에 있는 나
두 바퀴 속에 있는 어린 소년을 본 나

빗소리에 절망의 소리가 묻혀갈 무렵

슬퍼해야 하는가
슬픔을 거두어야만 하는가

그 사이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사이 속의 나 / 이루고 (2018/10/11 일기장) 」



스물네 살.

서울에 올라온 지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루푸스 무릎 관절염은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유일하게 함께해 준 친구였다. 특히 출퇴근길에 우리 사이는 더없이 돈독했다. 하나의 계단은 하나의 산과도 같았다. 에스컬레이터가 없는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빨간 무릎은 나를 끌어안은 채 좀처럼 놓아주는 법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릴 땐 늘 마음이 조급했다. 혹여나 내리는 속도가 느려 문이 닫혀버릴까 불안했다. 매일 아침, 물풍선처럼 부풀고만 마는 무릎을 만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게 있었지만, 잊고 살았던.

어쩌면, 외면해 왔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하루종일 서서, 몸을 쓰며 버텨야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맴돌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무너지고야 말 거라는,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해 왔던 미래였다.


오랜 고민 끝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좋아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 조각 하나를 건져 올렸다.


디지털 편집디자인 실무 과정.

하얀 도화지 위에 상상한 무언가가 그려지고, 그것이 세상에 보여진다고 상상하니 마음속 어딘가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국가에서 학원비를 지원해 준다고 했다. 과정만 마치면 취업도 순조로워 보였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눈앞에서 화려한 연극을 펼쳤다.


오랜만에, 설레기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하는 6개월 과정에 등록했다. 출석체크를 지키기 위해 지각도 결석도 없이 성실히 학원을 드나들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하나하나 손에 익어가는 동작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감각을 흔들어 깨웠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증도 손에 쥐었다. 수강 종료가 두 달 남은 시점, 학원에서는 취업 상담이 시작됐다. 국비 학원이라는 간판 아래, 취업률은 곧 학원의 성과였고 그들과 우리는 암묵적인 손을 잡았다. 겉으로는 선생과 제자의 진심 어린 상담인 양 순조롭게 상담실을 오갔다. 하지만 그날 이후, 상담실에 더는 들어갈 수 없었다. 정확히는 상담실에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취업을 할 수 없어요.

마우스를 잡을 수가 없어졌거든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발 끝 너머에 놓인, 작은 냉장고.

의자에 매달린, 검은 백팩.

현관에 놓인, 회색 얼룩이 묻은 하얀 운동화.


아침마다 마주하는 풍경에 눈인사를 하고 선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도꼭지를 젖히자 손바닥 위로 차가운 물줄기가 내려앉았다. 익숙한 일상 속, 낯선 새끼손가락이 시선을 붙잡았다. 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마치 시간은 멈춘 듯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손은 생각할 틈도, 준비할 시간도 내어주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손가락들은 물결 모양을 이루며 휘어져갔다. 명의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한양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님을 찾아가도 변해가는 손을 막을 방법은 좀처럼 들을 수 없었다. 손가락변형에 관련된 병원문을 수차례 여닫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마치 그들은 하나의 문장 밖에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하나 밖에 할 수 없는 사람 같았다. 그저 변해가는 손가락을 하염없이 조물거릴 뿐이었다.




좌절과, 혹시 모를 희망을 반복하던 어느 날.

빠르게 변해가는 손을 조금이라도 늦춰주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 한 재활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잡았던 동아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잊은 사람처럼 긴 책상 앞에 앉아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건네받은 티슈 두 장을 손에 쥔 채, 겨우 인사를 전하곤 화장실로 향했다. 눈물이 그칠 때까지 세면대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복도로 나와 수납을 마치고 선,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그때, 휠체어를 탄 어린아이와 중년의 여성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두 시간이요. 네, 기다릴게요."


그녀는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는 듯했고, 오는데 두 시간이 걸리는 듯 보였다. 장애인콜택시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두 시간이라는 단어가 들려왔을 때, 그녀가 당연히 항의할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그 옆의 아이도 익숙한 듯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향해 우산을 펼쳤다. 길을 건너 파란색 버스에 올라탔다. 서울 시내버스를 타고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건, 아마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출구 계단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낯선 건물이 하나둘 지워져 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간판의 글씨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빗줄기는 굵어졌다. 달리는 바퀴에 비가 차이는 소리와 도로를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버스 안을 아득히 매웠다. 세상의 소리를 빗소리로 모두 먹어버리겠다고. 그러니 네 울음소리도 감춰주겠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눈물과 함께 흘러나오는 신음소리가 빗소리에 묻히자 더 많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폭우와 아무도 없는 버스.

마치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울게 해 주겠다는 듯.

내게 준비한 작은 선물 같았다.

어쩌면, 세상이 내미는 미안함의 표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두 시간이요. 네 기다릴게요.'

그녀의 덤덤한 목소리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두 모자의 표정이 어른거렸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눈물 안에 함께 담겼다.


한 없이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짧은 머리 소년.

운동장을 내달리고 자전거를 타야 할 나이.

너무도 어린아이에게, 너무도 일찍 찾아와 버린 시련.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당연한 일'이 되기까지.

그들은 내가 모르는 시간을 지나왔겠지.

짐작할 수도 없을 시간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시간에 익숙해져 가야 할까.


나는, 눈물을 흘려도 되는 걸까.


어느샌가 북적해져 버린 버스와 함께 복잡해져 버린 마음을 한 손에 붙잡은 채, 높고 긴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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