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회생활

처음 사는 삶이라 서툴렀다. 그리고 앞으로도

by 붕대토끼



어릴 땐 뭐든 귀엽게 봐줬는데
작은 몸짓에도 수줍은 표정에도

어릴 땐 다들 쉽게 친해졌는데
웃기지 못하고 취하지 않아도

요즘은 작은 실수를 해도
조금만 어벙하게 굴어도
쥐 잡듯 나를 잡으려 해 들

이제와 무시 안 당하려고
맘먹고 까칠한 척해봐도
코웃음 치며 다들 비웃기만 해

사랑받고 싶어 나도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사랑받고 싶어 나도
조금 서투를지 몰라도

< 애정결핍 / 헤르츠 아날로그 >



동물.

동물을 좋아한다.


열아홉 살의 꿈은 사육사였다. 가까이서 뒤뚱거리는 펭귄의 엉덩이를 보고 유리벽 너머 재규어와 눈을 맞추는 일은 지루한 학교 생활의 작은 쉼터였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웃을 일 없던 일상 속에서 유일한 행복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 믿음을 안고서, 사육사가 되고자 동물관리학과 강의실 문을 열었다.


열 평 남짓한 회색빛 돌바닥 집을 구경하던 어느 날.

집주인은 하얀 털옷을 입은 싱글이었다. 북극이라는 고향이 그리운지 그의 얼굴엔 어떤 행복도, 어떤 편안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랗게 바래진 옷을 걸치고 선 집의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만을 반복했다.


내가 자리를 떠나는 순간까지.

어쩌면, 회색빛 돌바닥 위로 검은 물감이 쏟아질 때까지.


주말마다 그들의 표정을 보아서일까.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들은 울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동물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품고 선,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동물보호와 관련된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모니터 앞에 앉아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던 어느 날.

< 스타트업 동물 신문사 인턴 기자 모집 >이라는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여기다.'


뜨거웠던 여름.

망설임 없이 서울로 떠났다.

60만 원이 든 통장 하나 그리고 빨간색 백팩 하나 고 선.


35만 원짜리 고시원 방 하나를 구했다. 그리고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그 당시 최저시급 월급은 120만 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을 벌러 온 게 아니라, 동물을 구하러 온 거였으니까.


고시원 앞에는 얇은 지갑을 반겨주는 마음 넓은 야채가게가 있었다. 천 원짜리 새송이버섯 한 봉지, 이천 원짜리 양파 한 봉지, 이천 원 짜리 파프리카 한 봉지를 품에 안고 공용 부엌으로 향했다. 채소를 조각조각 썰어 오천 원의 든든함을 만들었다. 파란 뚜껑 유리 반찬통은 일주일의 작은 안도였다.


회사까지는 걸어서 10분.

점심은 언제나 고시원에서 해결했다. 만들어 둔 야채볶음 그리고 공짜로 제공되는 밥과 김치면 부러울 것 없는 한 상이었다. 배가 더 고픈 날엔 공짜 라면을 끓여 먹었다. 휴대폰은 전화와 문자만 가능해졌다. 옷이란 건 그저 더위와 추위를 견디기 위한 생존용일 뿐이었다. 지갑 열릴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80만 원은 늘 모자라기만 했다. 가끔 동료와 어쩔 수 없이 점심을 먹어야 하는 날이면 커피값을 꺼내는 손끝이 떨려오곤 했다.




두 개의 바지를 돌려 입으며 출근하던 이유는 단 하나.

써 내려가는 작은 문장이, 동물이 살아가는 세상에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북극곰은 바다표범이 아닌 음식물쓰레기를 먹고산다는 것.

실험용 비글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운 입은 사람을 향해 꼬리를 흔든다는 것.


동물의 비극적인 진실을 알아가고 알리는 일은 숙명처럼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지하고 어두운 기사 금지령이 내려졌다. 회사는 더 이상 슬픈 이야기는 관심 없다는 듯, 유명 연예인의 반려동물 기사에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랜 고민 끝에, 키보드를 내려두었다.


고시원 방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댔다. 혹시 옆방에 소리가 새어나갈까 숨죽이며. 그때 이어폰 너머로 <헤르츠아날로그의 애정결핍>이 흐르고 있었다. 가사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른이 된다는 거, 쉽지 않더라' 라며.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기사의 주제가 나와 맞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나,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퇴사가 아니었다. 말수가 적고, 말이 느리고, 걸음이 느리던 나. 동료들과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했던 나. 첫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버거웠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동물을 돕는 일을 한다는 작은 자부심 하나였다. 그마저도 사라지자, 꾹꾹 눌러 참아왔던 힘듦이 결국 터져버렸다.



첫 사회생활.

이라서 외롭고 힘든 줄 알았다.


첫 삶.

이라서 외롭고 힘든 거였다.



부서지면서 나는 파편 조각이 되었다.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조각이 되고 또 조각이 되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산산이 부서질 때마다 떨어졌던 그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모여 내가 되어 있었다.


많이 부서질수록, 조각은 많아졌고

그렇게 큰 사람이 되어갔다.

나만의 무늬를 가진 사람이 되어서.

앞으로도 여전히 부서지고 파괴되고 외로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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