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여느 날처럼 핸드폰을 잡고 뒹굴거리던 날
SNS를 들락거리고 있는데, 화면 상단에 카톡 아이콘이 떠올랐다.
가뭄에 콩 나듯 연락 오는 핸드폰에 떨어진
물 한 방울,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
1초 만에 카톡을 들어가 확인 한 내용은
[올리부용] 고객님! 30% 할인쿠폰이 오늘 곧 사라져요~! 브랜드 찜하시고 혜택을...
아, 또 광고 메시지다.
그럼 그렇지.
마이 행복트립, [정기적 수신동의 안내]
안녕하세요. 마이 행복트립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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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포케, 고객님 잠깐만요!
신용조회가 발생했어요.
주르륵. 옹기종기 줄 세워 모여있는 광고성 카톡이 밀려나지도 않고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새삼 연락올 곳도 없지만 정말 없구나.
우울증으로 말아먹은 10년 동안 남아있던
친구 1명, 대학동기 2명, 생일에 가끔 인사하는 동창 2명..?
손가락을 영끌해봐도 다섯 손가락을 넘지가 않는다.
사교성이 좋아 교우관계가 좋다던 생활기록부는 잉크가 말라비틀어져 바랜 지 십수 년. 그 청소년은 자라서 친구가 한 명이 되었습니다...
집 앞 나무에 붙은 매미가 맹렬하게 울어대던 여름, 멍하니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맞이한 대학교 방학은 심심함의 정도가 도를 지나쳤다.
핸드폰은 잠잠했고, 연락할 사람은 없고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닌데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더니
인생은 내향인, 소울은 외향인의 영혼이 갇혀 날뛰고 있었다.
*어느 인터넷 유저의 아빠가 쓴 명언
친구 도합 5명.
후..후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인간관계를 가졌지만 내게는 늦깎이 인생살이로 얻은 것이 있다.
바로 뻔뻔함.
30대에 대학도 가서 친구(라 쓰고 어린 동생들)도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인간관계를 재건하지 못할 이유는 뭔가?
뇌 속에서 해결책 파일을 탁 내리쳤다.
곧바로 나는 얼마 전에 중고거래를 했던 당근을 켜서 게시글을 공들여서 작성했다.
제목: 동네친구 구해요~
안녕하세요! OOO동 사는 30대 여성입니다.
카페에서 수다 떨고 밥도 먹고 편하게 만날 동네친구 구해요!
*또래 여성이었으면 좋겠어요~!
야무지게 추신까지 달아 [완료]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붙잡고 기다린 지 수분, 싸늘한 무관심이 몇 시간이 지나자 댓글이 다닥다닥 붙기 시작했다.
댓글은 총 10개.
내가 잡은 물고기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물을 거둬들일 생각에 벌써 마음이 풍족했다.
그렇게 일곱 분과 채팅을 하다가 카톡을 주고받았고 쉼 없이 바뀌는 알람 팝업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싸가 바로 이런 기분일까?
그간 답장이 늦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갸륵하게 그들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첫날 적극적이었던 그들은 수일이 지나자 시들해졌고 몇몇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남은 3명.
우리는 잘 맞았고 이내 약속을 잡았다.
대망의 첫 당근친구와의 만남 날이 다가왔다.
어떤 사람이 나올까?
*쓰여진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이재희 (27세 어린이집 교사)
Q. 재희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재희와는 카톡으로 처음부터 반말도 하고 너무 잘 맞는 친구였다.
첫 만남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나는 애써 만진 머리가 곱슬곱슬 부풀어 올라 한 손은 우산, 한 손은 핸드폰을 들고 머리를 꾹꾹 누르며 첫인상을 걱정했다.
약속 장소 3미터 전, 인상착의를 서로 공유하고 우산 너머로 슬며시 사람들을 스캔하며 대조하고 있었는데 설마 하는 그녀가 언니! 를 외치며 다가왔다.
그녀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예쁜 외모의 여성이었다.
너무 예쁘고 스타일리쉬한 나머지 살짝 기가 죽을 정도였는데, 그녀는 내 북슬북슬한 머리를 보고도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었고 첫날에 우린 2차까지 가서 술을 마실 정도로 친해져 의자매를 맺었다.
그녀는 편안한 사람이었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성격이었다.
재희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한 동생이 되었다.
한수지 (29세 프리랜서 작가)
Q. 수지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첫 만남부터 화끈한 성격을 보여줬던 수지는 시원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두 번째 만남을 기약했고 역시나 잘 맞는 동생을 얻은 것 같은 나의 '당근 경험'은 성황리에 이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 나는 나이트메어를 경험하며 인생의 쓰디쓴 교훈을 얻게 된다.
수지는 한마디로.. 술 마시고 개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욕설을 했으며 술집에서 소란을 피웠다. 감당할 수 없는 무례함과 소란에 나는 계산을 하고 도망치듯 집에 와버렸다.
버스에 실려 평소답지 않은 늦은 귀가를 하고 불 꺼져 있는 거실을 지나쳐 침대에 털썩 앉았다.
뒤늦게 깊은 현타가 밀려왔다.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띵띵 아파오기 시작했다.
늦은 밤, 그녀에게 토스당한 술값을 회상하며 힘들게 잠이 들었다.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 수지에게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그 밤에 개가 되었던 것인지 기억을 삭제하고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전의를 상실한 나는 [차단]을 누른 후 그녀를 내 인생에서 삭제했다.
박예린 (28세 프로그램 개발자)
Q. 예린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예린 씨는 처음엔 나를 너무 어색해했다.
반말을 하자는 내 말에 난색 하며 존대를 고집했고 심지어 헤어질 때는 목례를 했다.
재밌게 놀았지만 어쩐지 그녀에게 다시는 애프터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망한 소개팅...? 그런 느낌.
그런데 예상밖에 예린 씨는 나와 연락을 이어갔다.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만나면 만날수록 우리는 가치관이 잘 맞았고 대화가 잘 이어졌다.
반말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 다르게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이제는 꽤 편안하게 느껴진다.
어색했던 첫 만남,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제 우리는 자주 동네를 거니는 동네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10명의 댓글과 7명의 채팅 그리고 3번의 만남 끝에 2명의 동네친구를 얻었다.
'하늘에서 친구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 하던 내게 2명의 친구가 생겼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관계를 위해 노력을 이어간다.
인생의 소울메이트는 역시 만나기 어렵지만,
그것을 메우는 노력과 시간이 소울메이트를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오래된 유년시절 친구처럼, 처음엔 맞지 않더라도 서로의 노력으로 얻어진 '친구' 타이틀은 별게 아닐지도 모른다.
친구를 원한다면 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