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거리응원을 하다

by 이 륙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어떠자 프랑스에서 맞이하게 됐다. 내가 있는 곳은 보르도,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도시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곳은 '와인의 고장'으로 불리며 면적은 목포시, 인구는 경주시 수준이다. 위치적 조건으로 인해 12월 평균 기온은 영상 10도다. 그야말로 거리응원하기 딱 좋은 날씨다.


유럽의 한일전: 프랑스 대 잉글랜드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8강에서 만났다. 이건 마치 한국이 일본을 만난 것과 다름없는 대진이었다. 12월 10일 오후 8시 경기 시작 일정에 맞춰 빅투아 광장으로 나갔다. 30분 여유를 갖고 나갔지만 안일한 생각이었다. 축구 강국 프랑스의 8강전이 아닌가. 상대는 영원한 라이벌 잉글랜드이고 말이다. 게다가 두 나라는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팀들이었다. 광장과 거리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고 바로 이전 경기에서 모로코가 스페인을 꺾어 모로코 주민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프랑스에는 약 150만 명의 모로코인이 거주한다.)

8강전 승리를 축하하고 있는 모로코 주민들

폭죽 소리와 흥분한 사람들로 인해 정신이 없었고 카페나 펍에도 자리가 없어 광장에서 벗어났다. 메인 거리인 생꺄트린 가를 따라 걸으며 비집고 들어갈 펍이 있는지 살폈다. 얼굴엔 삼색 페인팅, 어깨엔 프랑스 국기를 두른 사람들이 거리를 횡보했다. 한 골목에 들어서니 멀리 조그마한 광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두 개의 펍, 세 개의 TV 스크린, 백여 명의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도 앉는 건 불가능했다. 좌석 뒤 공간에도 사람이 많아 결국 한참 떨어진 곳에서 경기를 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처럼 대형 스크린을 갖다 놓으면 어디서 보든 문제되지 않았을 텐데 여기는 스크린이 컴퓨터 모니터 사이즈여서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내 위치에선 스크린이 휴대폰 크기로 보였고 선수들은 점이나 다름없었다. 공도 희미하게 보여 카메라 움직임으로 경기 흐름을 파악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리를 지킨 이유는 프랑스 사람들의 광적인 축구 열기에 있었다.

KakaoTalk_20230103_073133660.png 작은 스크린에 모여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들

축구에 진심인 나라

여기저기서 각종 응원가가 쏟아져 나왔다.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어느새 주위 모두가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프랑스 선수가 화면에 비치면 환호성을 질렀고, 잉글랜드 선수가 화면에 비치면 야유를 퍼부었다. (손가락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루, 음바페, 그리즈만과 같은 유명한 프랑스 선수는 그들만의 별명과 응원 구호가 있는 듯했다.


전반 17분, 프랑스가 첫 골을 넣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국기를 흔들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고, 다른 곳의 분위기는 어떨까 궁금하여 저 멀리 강변의 펍으로 향했다.


이전 장소에 이삼십대가 많았다면, 강변엔 십대가 많았다. 스크린 앞 앉을 곳은 물론, 그 뒤 스탠딩 공간, 그 보다 더 뒤에 있는 도보에까지 사람들로 꽉 찼다. 결국 도보에 있는 벤치 가장자리에 올라 서서 앞쪽 수많은 사람의 머리 사이를 공략해 경기를 봤다. 이쪽 열기는 더 대단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미 거하게 취한 사람들 때문인지, 응원과 야유에 힘이 실렸다.


후반 54분, 잉글랜드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다 같이 요리스(프랑스 골키퍼,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의 이름을 반복해서 외쳤다. "요리스! 요리스! 요리스!" 그러나 케인의 킥은 골망을 흔들었고 사방에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곧 노장의 주력 선수 올리비에 지루가 후반 78분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러자 응원 속 감춰져 있던 응축된 긴장감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저 멀리에서도 함성이 들렸고 옆에 있던 남자는 나의 옷깃을 꽉 붙잡고 흔들어댔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듯 머리 위로 두 손을 깍지 낀 채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전력질주하는 사람, 위아래로 방방 뛰는 사람도 있었다. 압도적인 분위기로 나 또한 프랑스 사람이 된냥 손뼉을 치고 환호를 질렀다.


혁명의 나라

이날 가장 충격적인 경험은 프랑스의 승리, 즉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에 시작되었다. 내가 있던 펍을 포함해 근처 서너개의 펍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백 명은 족히 되는 인파가 도보, 차도, 트램 레일 위에서 무리를 이루어 행진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신호는 볼 필요도 없었다.) 한 남자가 신호등을 타고 올라가 프랑스 국기를 장엄히 흔들고 있었다. 팡파르 소리가 들렸고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졌다. 누군가 터뜨린 파란색, 빨간색 스모그가 공기 중으로 퍼졌다.


그때 차 두대가 인파로 인해 길에 멈춰 섰다. 그러자 사람들이 차를 둘러싸고 유리창과 보닛을 손바닥으로 마구 두들겨댔다. 차 안에는 중년 부부가 타고 있었는데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익숙한 듯 웃고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윈드실드에 맥주를 붓고 보닛에 올라앉았다. 어떤 이는 차 루프 위로 올라가 주변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그러기를 5분 정도 반복하다 사람들은 차를 곱게 보내주곤 큰 분수대가 있는 부흑스 광장으로 이동했다.

KakaoTalk_20230104_062922039.jpg 가던 차를 멈춰 세우고 그 위에 올라앉는 축구팬

부흑스 광장 전역에 수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승리를 즐겼다.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주인 없는 축구공이 하늘 높이 올라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있었던 구역은 중앙 분수대였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무리가 분수대에 올라가 응원가를 불렀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분수대를 무대 삼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자 더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노랫소리는 더 커지고 흥분도 클라이맥스에 달했다. 3미터는 족히 되는 분수대 2단까지 올라가려는 사람도 있었다. 디딤대가 없었기 때문에 높이 뛰어 상체만 걸친 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올라가려 했으나 실패했다. (높이가 상당해서 그가 다칠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하나둘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집단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나고 30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자연스럽게 프랑스 혁명이 연상됐다. 과연 혁명을 일군 선조들의 후예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방식의 표출이 이들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과격하고 무모한 행동이 난무했지만 '자유'를 가장 중요시 여기는 프랑스에선 모두 충분히 용인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제지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드컵 시즌 중 거리에 항상 많은 경찰이 주둔했다. 그러나 폭력만 발생하지 않으면 멀리서 주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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