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맛집을 찾아다지니 않는다. 웨이팅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지만, 맛에 큰 차이가 없다면 시간을 아끼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요즘엔 맛없는 식당을 찾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먹을만 하다. 그래서 난 여행을 가서도 꼭 먹어야 될 음식이나 유명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아무거나 먹는다.
지난 11월 밴쿠버에서 그렇게 먹었던 음식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유명 맛집은 단연 없다. 모두 지극히 일반적인 동네 식당이다. 그래서 오히려 소개할 음식이 밴쿠버 현지인들의 식문화를 잘 대변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카페테리아
하루는 한 대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트 계산대처럼 생긴 곳에서 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음료는 내가 직접 골라 담으면 되었다. 여러 회색 원형 테이블이 있는 다이닝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밥 먹는 학생들, 공부하는 학생들, 수다 떠는 학생들로 붐볐다. 10분이 지나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큰 기대가 없이 먹었는데 맛있었다. 패스트푸드와 수제버거 사이, 그 어디쯤이었다. 버거보다 고구마튀김과 감자튀김이 더 맛있었다. 크기도 크고 속이 꽉 차있었다. 바삭함은 덜했지만 그렇다고 눅눅하지도 않아 식감도 이 정도면 합격이었다. 이름 모를 겨자색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매콤함과 알싸함이 더해졌다. 감자튀김 위에 뿌려져 있는 소스는 그레이비 소스인데, 캐나다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다. 더 전문적인 식당에 가면 '푸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푸드코트
북미에는 쇼핑몰이 정말이지 많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매 기차역 마다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오프라인 쇼핑몰의 시대는 갔다'는 기사를 오래 전 읽었던 것 같은데, 밴쿠버에는 적용되지 않는 듯했다. 쇼핑몰에 가면 주차장, 출입구, 상점, 마트, 식당, 카페, 푸드코트 모두 사람들로 가득했다. 10대에겐 약속의 장소, 가족에겐 외식의 장소, 노인에겐 휴식의 장소였다. 보통 시설 중앙에 위치한 푸드코트는 특히 북적이는 곳이었고 늘 자극적인 음식 냄새가 났다. 나 또한 이곳에서 여러 번 끼니를 해결했다.
코퀴틀람센터몰 푸드코트에는 여느 곳과 같이 대여섯 개 식당이 밥 먹는 공간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 같았지만 90%가 아시안푸드점이었다. (예를 들어, 태국 식당, 베트남 식당, 중식당, 일식당... 이런 식이다.). 아쉽게도 한식당은 없었다. 많은 국가 및 기업적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리안푸드의 글로벌 영향력은 아직 미미하다.
아무튼 나는 모든 아시안푸드를 서빙하는 종합 오리엔탈 식당에서 주문을 했다. 먼저 면 또는 밥을 고른 뒤 네다섯 가지 야채나 고기를 고르면 컨테이너에 담아주는 시스템이었다. 얼마나 담는지 엄격한 기준이 없어, 최종적인 양은 직원의 역량에 따라 달라졌다. 사진에서 보이는 양은 적은 편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맛 그대로였다. 짜고 달고 기름지고 배가 터질듯한 포만감을 주는 맛이었다. 고기에 양념이 푹 배어있어 밥이나 면, 야채와 꼭 같이 먹어야 했는데, 고기의 양이 너무 많아 밸런스를 맞추는 게 힘들었다. 무식하게 고기만 담기보다는, 밥과 야채, 옥수수를 많이 담으면 자극적인 맛을 조금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치만 면도 간이 무척 세다.). 푸드코트라고 해서 높은 밴쿠버 물가를 거스를 순 없었다. 컨테이너 하나에 담긴 음식의 가격은 15,000원을 웃돌았다.
한식당
하루는 산책을 하다 눈에 밟혔던 한식당에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고 '사건의 지평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직원 분과 한국어로 인사하고 자리를 안내 받았다. 처음 온 곳인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메뉴가 굉장히 많았다. 이름만 보아도 군침이 도는 메뉴들이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원통했다. 고심 끝에 고추장찌개를 시켰다.
음식을 받자마자 익숙한 비주얼과 냄새에 감동 받아 허겁지겁 서너 입 먹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음미하니 그저 그런 맛이었다. 평범한 고추장찌개 맛이 전혀 아니었다. 고추장찌개라면 진하고 깊은 고추장과 고기 육수 맛이 나야 하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애호박 등의 야채가 있어야 하는데, 제육볶음을 뚝배기에 끓인 맛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제육볶음을 뚝배기에 끓이면 먹을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남김없이 먹을 수 있었다.
아무 데서나 아무거나 먹을 경우, 아주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입이 떡 벌어지게 맛있는 음식을 먹기는 힘들다. 하지만 학생들, 현지인들, 한국 주민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맛집에 안감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