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보러 밴쿠버에서 2주 동안 지냈을 때였다. 캐나다 다른 도시도 둘러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멀리 가고 싶었다. 토론토? 아니다. 밴쿠버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지도를 보니 토론토 옆 몬트리올이 있었다. 퀘벡주에 있으니 프랑스어를 쓸 테고, 앞으로 가볼 기회가 흔치 않을 것 같았다. 새 여행지의 조건이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같은 나라 맞아?
도착한 첫날 들었던 의문이다. 일단 비행 시간이 무려 5시간이었다. 5시간을 날았는데 여전히 같은 나라였다. 인천에서 5시간이면 중국, 대만, 홍콩을 지나 호찌민까지 가고도 남는다. 5시간 비행은 기후도 바꾸어 놓았다. 밴쿠버도 상당히 추웠는데 여기는 더 추웠다. 거리에는 지난 폭설로 인해 눈이 쌓여있었다. 찬 공기는 껴입은 겉옷이 무색하게 몸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 혹독한 추위가 이 도시와 잘 어울렸다. 겨울이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겨울에 완전히 장악되었지만, 도시는 그것이 원래 상태인 듯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장 신기했던 건 역시나 언어였다. 사람들이 갑자기 프랑스어를 썼다. 모든 글씨가 프랑스어로 되어 있었다. 지하철역 출입구에는 EXIT이 아닌 SORTIE가 쓰여있었다. 영어는 보조적인 역할만 할 뿐이었다. 버스 기사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어느 카페 주인은 아이스모카의 "아이스"를 못 알아들어 "글라쎄"라고 다시 말해줘야 했다. 젊은이들은 영어를 구사했지만 실력은 저마다 천차만별이었다.
지하철역, 지하철, 교통카드 모두 밴쿠버의 것과 생김새가 달랐다. 사람들의 분위기나 도시의 색감 또한 달랐다. 여유 있고 살기 좋은 단풍 든 밴쿠버와 달리 몬트리올은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회색빛 도시였다. (회색의 음침함이 겨울을 돋보이게 했다.) 인종도 더 다양했다. 뉴욕이 연상됐다. 그러니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나라 맞아?
센트럴에 있는 장대한 건물들이 시카고 느낌을 주었다. 변두리 거주 지역의 낮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은 브루클린 분위기를, 구시가지 올드포트는 유럽 분위기를 풍겼다. 반면 거칠게 쌓인 눈과 무식하게 넓은 도로와 뜬금없는 광장, 동상, 기념비는 러시아의 이미지와 비슷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외관은 유럽 대성당들과 같이 고풍스럽고 거대했다. 내부로 들어가자 생소한 인테리어 양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통 성당에는 쓰이지 않는 색과 장식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무거운 고딕과는 달리 컬러풀한 키치가 엿보였다. 확실히 캐나다는 이전에 '신대륙'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다양한 문화가 함께 시간을 견디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섞이고 섞여 몬트리올만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로부터 파생된 사회 이슈도 물론 있다. 바로 영-프 언어권 간의 갈등이다. 몬트리올은 구역별로 사용하는 언어가 암묵적으로 나뉜다고 한다. 서쪽에선 영어를, 중심과 남쪽, 그리고 동쪽에선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한다. 북쪽은 우범지역이고, 그 근방엔 "리틀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유대인 지역도 있다. 문제는 사회적 계층이 언어에 따라 갈린다는 것이다. 프랑스 혈통이거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비기득권에 속한다. 후자는 무시와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몬트리올에 3년째 살고 있는 친구는 근무 중 고객으로부터 프랑스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언어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밴쿠버 출신 백인인데도 불구하고).
그 외 몬트리올의 유별난 특징이 또 하나 있다. 도로와 도보가 엉망이라는 점이다. 성하지 않은 길을 찾기가 힘들다. 눈, 비, 우박과 같은 험한 날씨 때문인데, 걸을 때마다 웅덩이를 밟지는 않을까, 발을 헛디디진 않을까, 미끄러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기억이 난다. 이는 너무 뚜렷한 특징이라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러 가면 항상 등장하는 소재라고 한다.
몬트리올의 프랑스어 억양은 프랑스 본토 억양과 크게 다르다.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서 세세한 차이를 알아내긴 힘들지만, 확실히 이곳의 억양에는 북미 영어 억양이 섞여있다. 영국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 억양은 R을 발음할 때 혀를 굴리는데, 이러한 특징이 프랑스어를 할 때도 나타난다. 반면 프랑스 본토에서 R을 발음할 땐 혀를 굴리는 대신 목을 긁는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부드럽고 느끼하게 들리는 프랑스 본토 억양과 달리 몬트리올 억양에는 알게 모를 유쾌함이 있다.
바로 이 유쾌함 때문에 프랑스인들로부터 조롱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몬트리올 억양이 전통적인 프랑스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500여년 전 프랑스인들과 함께 대서양을 건너온 언어가 그대고 보존되고 있다는 논리다. 듣기로는 이러한 높은 자부심이 영어 쓰기를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영어권 국가에서 유래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굳이 새로운 프랑스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다고.
새롭고 흥미로운 도시였다. 살기 좋은 도시라고는 못하겠지만, 살아보고 싶은 도시인 점은 확실하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도전적"이라는 이유 때문인 것 같다. 낯선 언어, 험한 날씨, 엉망인 도로, 따가운 시선 등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하는 요소들이 되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매우 불편하겠지만, 동시에 매일 무언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적응하는 생활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