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건너편, 두 학생이 한 학생을 뒤에서 덮치려 한다. 이내 가방을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친 뒤 욕을 퍼붓는다. 그러곤 멀뚱히 서있는 학생을 뒤로하고 유유히 걸어간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을까? 아래 선택지 중 무엇이 옳았을까?
a. 즉시 뛰어가 두 학생을 제지하고 행동을 바로 잡는다.
b. 두 학생이 가고 난 뒤 건너편으로 가 가방을 주워준다.
c.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간다.
일단 c는 확실히 옳지 않아 보인다. 가해 학생들은 아무런 결과도 마주하지 않고, 피해 학생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갔던 나는 행동하지 않은 것을 두고 평생을 후회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a 또는 b를 선택해야 한다. a는 도덕적인 행동에 가장 근접해 보인다. 피해자를 돕고 가해자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때문이다. 즉 a는 정의를 실현하는 느낌을 준다. 얼마 전까지 나는 a를 택했다.
한 외국계 회사 최종 면접에서 위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상황은 이러했다. 직장동료 둘과 회식을 하고 있는데, 남자 직장동료가 여자 직장동료를 성추행했고, 나는 그것을 목격했다. 이때 나는 a. 남자 직장동료의 잘못을 지적한다 b. 다음날 여자 직장동료와 전날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질문을 받자마자 호기롭게 a라고 답했다. 가해자의 행동은 너무나 그릇됐고, 그러한 행동은 보는 즉시 바로잡아야 하며, 그럼으로써 자기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에서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곧장 뛰어가 두 학생을 제지하거나 직장동료의 성추행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피해자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만 앞선 이기적 도덕심의 사례인 것이다.
물론 비도덕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옳고 그른 일을 판단하고 직접 실천하는 데에는 바로 선 기준과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오로지 '현재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며, 그 이면에 영웅심리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 두 상황에서는 조금만 더 섬세함을 발휘해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a는 피해자의 입장보다는 나의 충동에 의한 결정이다. 선한 충동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자의 무력함은 배가 될 수 있다. 모든 주도권을 제 3자인 나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의 이익으로 둔갑한 나의 정의 실현 외 그 어떤 해결책도 제공하지 않는다. 닥친 상황을 종료할 수는 있어도 그것은 현명함이 결여된, 거짓된 결말을 부르는 인위적 종료이다. 이는 내가 볼 수 없는 미래, 내가 없는 곳에서 상황 악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학생이 나중에 더 짓궂은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반면 b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 선택이다. 나의 충동이 아닌 피해자의 감정을 고려한 것이다. 부적절한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언제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용히 가방을 주워 건네거나 다음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이제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 보자' 제의하고, 또 응원하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아마 학창 시절 도덕 책에도 나오고 직장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야 하는 성범죄 예방 교육에서도 나오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내용을 수십 번 들었다. 그러나 노출만 되었지 학습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뒤에야 수차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그때 '도덕심'이라는 것이 '이기적'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도덕도 상황에 따라 행동방침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말은 도덕에도 적용된다. 도덕에도 섬세함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